월요일 오전 출근 후 회의에서 사장한테 한 소리 듣다가 과거 내 밑에 있던 팀원이 생각이 났다. 목표의식의 부재, 위험한 현실에 대한 준비의 필요성을 목터져라 외쳤던 나의 과거가 떠올랐다. 왜 너는 내가 깔아준 멍석에서 더 나아갈 생각을 하지 않느냐, 왜 도전하지 않느냐에 대한 직설적인 외침. 그것들이 얼마나 그들 가슴에 비수로 꽂혔을지 생각해본다.
사장한테 한 소리 듣다가 과거 내가 키우던 개가 생각이 났다. 아무데나 오줌싼 것에 대해 혼을 낼 때마다 눈을 피하고 이 상황만 모면하려는 모습이 그 때 내 밑에 있던 직원과, 그리고 사장의 잔소리를 듣고 있는 나와 겹쳐져 보인다. 지금 이 순간만 피하려는 얄팍한 충동에 부끄러움을 느끼다가도 기본적으로 지켜줘야하는 자존감마저 존중하지 않은데서 나오는 불쾌감과 두려움도 느낀다.
역할의 부재 또는 미비의 책임이 어느 쪽에 더 있느냐에 따라 왔다갔다를 거듭하는 나의 존재. 무능과 평범, 내몫과 네몫, 자세와 역할 등 기준이 요동치는 잣대에 따라 나의 평판과 나에 대한 인식도 같이 출렁인다.
나의 방패가 되어주고 내가 채워야할 내 몫의 경계가 희미할수록 이런 곤욕의 시간을 느끼는 것이 잦은 것 같다. 위에 인간들은 무조건적인 열심과 기본 이상의 성과, 기대만큼의 의욕을 요구하지만 자기 역할마저 불분명한 사람에겐 발 디딜 땅부터 마련해주고 농사를 지으라고 해야하는 것 아닐런지. 조직과 개인 사이에 누가 더 잘했느냐를 따지자는게 아니라 '회사'의 사전적 의미처럼 사람이 모인 것이니 먼저 사람이 살만한 곳을 만들어놓고 얘기하자는 것이다.
p.s 1: 똑같다. 신나게 혼내고 가르침을 원하면 얘기해라. 도와줄테니라는 마지막 멘트까지. 그 말을 하는 이의 심정은 방향을 알려주었으니 치열히 고민해보고 열심히 해봐라. 그러다 모르는게 있으면 언제든 도움을 청하고. 요는 치열하게 열심히 하라는 것. 헌데 롤이 희미한 사람은 처음에는 롤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다가도 끝내 롤이 생기지 않으면 외부요인에 핑계를 대고 스스로 마음의 안위를 얻으려는 행보를 가게 된다. 이는 '열심히'라는 개념 역시 어느 지점을 넘어가면 공격에서 방어의 뉘앙스로 변하게 된다는 것. 늙어감에 따라, 약해짐에 따라, 익숙해짐에 따라, '열심히 해'라는 명령보다는 '열심히 했다'는 격려가 필요하기에.
p.s 2 : 지금의 나에 대한 처방은 잘 모르겠지만 진단은 나온 것 같다. 확실히 나는 지금은 공격보다 방어에 급급하다.
p.s 3: 열심히는 좋은데 발 디딜 곳 없이 열심히만 하려다보면 전부 다 해야할 것 같고 달리기만 해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지향하는 방향과 위치를 확정하고 거기에 필요한 부분에 대해 명확히 선을 긋고 단계적으로 가려는 접근을 잊지말자. 남이 뭐라 하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