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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nie Volter Jan 09. 2017

맞선

생애 첫 선보는 자리

어머님 소개로 양가집 규슈분과 맞선을 보게 되었다. 온라인 상이라 신원을 밝히긴 곤란하지만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회사의 친족분이라고 한다. 자식이라곤 아들 둘 뿐인데 자식 덕 볼 길이 점점 요원해지자 부득불 차선색으로 어머님께서는 좋은 집에 자식 장가보내기로 전략을 바꾸신 것이리라. 나야 딱히 손해볼 것이 없는지라 당연히 어머님의 제안에 동의하였고 그렇게 오늘 약속된 장소로 좋은 인연 찾으러 왔다.

태어나 처음으로 소개팅이 아닌 선인지라 여러 면에서 나에게 낯설게 느껴진 점이 있었다. 
첫째, 식사 약속이 아닌 커피 약속이라는 것. 그동안은 항상 정오나 1시경에 식사 약속으로 만남을 진행하였는데 이번에는 2시 커피 약속으로 진행하게 된 것이다. 
둘째, 서로간의 연락처 공유가 아닌 중개인을 통한 만남이라는 점. 이번에 소개받은 루트는 어머니의 지인을 통한 무려 다섯 다리를 건너며 이어진 만남이라 당사자간의 연락처 교환 및 문자 연락은 거의 없었다. 혹시나 생길 불상사를 미연에 막기 위해 상대방의 연락처를 받기는 했지만 다리를 무려 다섯단계를 건너며 얻은 연락처인지라 선뜻 먼저 연락하여 안부따위를 묻기가 영 내키지 않았다.

아무튼 이런 생소한 조건을 감수하고 약속 장소에 1시간 일찍 도착하였다. 넉넉하게 차를 마시며 상대방을 여유있게 기다릴 마음으로 온 것인데, 정작 한 시간 전부터 여러 작은 사고가 터지며 수습하는데 바빴다. 지하철 역에 내려 걸어오다 난데없는 돌풍에 어렵게 손본 머리가 어지러진 것이다. 나의 경우 헤어스타일로 외모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데 많은 덕을 보는 편이라, 머리가 망가진 것에 대해 보수공사가 시급한 상태였다. 때문에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에 가서 머리를 손보고 자리에 앉으니 여유시간은 딱 40분 남은 상태였다.

허나 일이 안풀릴 모양인지 안좋은 징조는 계속 이어졌다. 카페에 가서 오늘 만날 지인의 이름을 얘기하며 자리 안내를 부탁했더니 종업원이 눈을 내리깔며 얘기하길
"손님, 저희는 별도로 예약을 받지 않습니다. 빈 자리에 편하게 앉으세요."
라고 하는게 아닌가. 맞선자리라서 당연히 이름으로 예약된 자리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랜다. 나는 부랴부랴 가장 사람이 없고 여유있어 보이는 자리를 선점하고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혹시라도 내가 전달받은 주소가 잘못되었나 확인해보았지만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공유받은 연락처로 문자를 하나 보냈다. 그동안 안보낸거 끝까지 보내지말까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혹시 나처럼 당황할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에티켓이라 생각하면서...

'안녕하세요? 오늘 뵙기로 한 사람이에요. 저 먼저 도착했으니 천천히 오세요.'

문자를 발송하고 5분이 지나도록 답장이 오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함흥차사, 감감무소식에 속이 답답했다. 시간이 좀 남아서 그 사이 화장실을 다녀올까 했지만 그 사이에 카페에 왔다 돌아가지 않을까 싶어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흡사 내 번호표가 지나갈까 노심초사하는 면접보러온 신입사원 꼴 같았다. 

그러다 드디어 약속시간이 되었는데 상대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도착은 커녕 문자에 대한 답변 역시 없었다. 다리를 동동 구르며 기다리다 5분이 지나자 전화를 해볼까 생각을 했다 관두었다. 어차피 좀 있으면 올건데 괜히 깐깐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10분이 지난후에 하자고 생각했다.
허나 막상 10분이 지나자 전화를 걸 맘은 더더욱 생기지 않았다. 거의 다왔겠지하는 맘도 있었지만 그 때 갑자기 들어오는 여자 손님이 하나씩 내 뒤를 지나갈 때마다 혹시하며 뒤돌아보느라 정신없었기 때문이다. 연락처가 없어서 두리번 거리다 가지 않을까 싶어 손을 들었다가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자 손을 내리고 혼자 뒤돌아보고 일어섰다 앉는 등 안절부절한 생쇼를 한동안 계속하였다. 타인의 발자국 소리에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5분 후에야 시간이 이렇게 됐는지 몰랐다고 문자가 한통이 왔다. 속내는 그렇지 않으면서 나는 여유있는척

'괜찮아요. 천천히 오세요.'

라고 문자를 보냈다. 마땅히 화가 나야할 상황에서 맘 한편으로 안도감을 느끼는 나 자신이 등신같이 느껴졌다. 이왕 이렇게 된거 오늘 만나면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해보려고 머리를 굴려보았다.

뭐 좋아하세요?
교회는 어디 다니시나요?
어떤 일을 하시는지?
취미가 어떻게 되세요?
영화 좋아하시나요? 저 영화 많이 좋아하는데...

마치 면접보기 전 질문을 생각하든 고민하던 찰나에 뭔가 표현하기 힘든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문자를 보냈던 전화번호가 찍힌 핸드폰이 눈에 들어왔고 고개를 들어 뒤돌아보니 전화를 들고 나를 쳐다보는 여성이 있었다. 어색한 웃음, 어색한 표정. 그렇게 그날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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