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세 아버지와 34살 아들의 티격태격 동거일기
어려서부터 나는 집에서 별종 취급을 받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잘 울지 않았고 출산 당시 몸무게도 보통 애들보다 꽤나 미달되는 저체중아로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크면서 외모가 친가도 외가도 닮지 않아 사촌과 친척들 사이에서도 특이한 놈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딱 하나. 내가 닮은 구석이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우리 아버지다. 근데 하필 닮은 것이 얼굴이나 키가 아니라 바로 처진 어깨라는 것이 문제다. 이 어깨 라인이 나의 삶에 얼마나 해악을 끼치는지 한번 이야기해보련다.
내 어깨는 꽤 처져 있는데 침대에 똑바로 누워도 어깨가 바닥에 닿지 않고 약 20도 정도 위로 올라와있다. 똑바로 서있으면 처진 어깨 때문에 거북목이 더 도드라져보이고 안그래도 크지 않은 키가 더 작아보인다.
특히 이놈의 어깨가 더할 나위없이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순간은 바로 정장을 입었을 때다. 가디건이나 마이를 입었을 때는 앞 단추를 푼다던가 속 내의를 밖으로 뺀다던가 보정할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정장을 입었을 때는 빈약한 나의 어깨 라인이 그대로 노출되는 것이다. 처진 어깨는 보는 이로 하여금 왠지 위축되어 보이고 자신감없이 뭔가 초라해보이는 느낌이 들게 만든다. 즉, 나는 외면적인 부분에 한한 것이긴 하지만 상당히 열등한 유전자를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그래서 학창 시절 때 시험 성적이 좋지 않아 아버지에게 혼날 때마다 이 어깨라는 부분이 논쟁의 승패를 좌우하였다. 당시의 상황을 재연하자면
"이놈의 자식은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멍청해? 시험 성적이 이게 뭐야? 애비는 니 나이에 돈벌어가면서 공부해도 니보단 잘했는데 닌 어찌 이꼴인교?"
여느 가정처럼 자식교육의 공과는 전부 어머니의 몫. 아버지가 어머니를 쏘아보자 어머니는 냅다 차가운 한 마디로 반격했다.
"점마 내 닮지 않았다. 내랑 닮은게 어디 있노? 당신 닮았재. 어깨 보소."
그 얘기를 듣자 안그래도 구겨진 아버지의 미간에 주름이 더 깊어졌다. 그리고 내 어깨를 '짝'소리나게 때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사내 놈이 어깨가 왜 이리 쳐졌나. 똑바로 못 피나. 이리 펴봐라. 이리. 턱을 아래로 당기고. 어깨는 딱 세우고. 등은 왜 구부리노."
마치 어미게가 자식게에게 똑바로 걸으라고 가르치는 이 풍경. 그 풍경을 어머니 한분만 딱하게 쳐다보면서 늘 어깨각도를 둘러싼 소동은 끝나곤 하였다. 내가 밖에서 사고를 치고 오면 누구를 닮았느냐는 얘기가 시작되고 그 귀결은 늘 어깨로 끝나는 그런 흔한 이야기.
그런데 내가 왜 갑자기 이 어깨 얘기를 꺼냈냐면 얼마 전에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주 회사 동료의 지인 추천으로 분당 쪽에 체형교정을 잘 한다는 카이로프락틱 시술소 한 곳을 가게 되었다. 가능하면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추나요법이나 안마 시술같은 것을 신뢰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에 소개해준 분이 피트니스 트레이너인 분이고 그 분이 워낙 강하게 추천하여 못이기는 척 가게 되었다. (실상 내 자세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만큼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에 불안함을 느껴 간 것이지만)
시간이 되어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자리에 눕자 마흔 너머 인상이 좋아보이시는 원장님이 푸근한 미소로 다가오시더니 '어디가 우에 안좋아서 오신교?'라는 말씀을 건내셨다.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의 총체적인 문제점(앞으로 돌출된 거북목과 입벌릴 때마다 소리나는 턱관절, 장기간 앉아있으면 느껴지는 허리와 골반의 통증, 안쪽으로 서서히 모이고 있는 O자 다리, 왠지 거북한 명치부근, 그리고 축 처진 어깨)을 말씀드렸다.
원장님께서는 흡사 곰발바닥 같은 손으로 내가 말씀드린 부분을 꾸욱꾸욱 눌러보시더니 '자세가 매우 안좋네. 어렸을 때부터 안좋은 자세로 넘 오래 댕겨서 몸이 많이 틀어진교."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한 부분 한 부분 짚으시면서 내가 평소에 어떤 자세(잠버릇, 다리꼬는 버릇 등 포함), 어떤 식습관을 가지고 있는지 점쟁이처럼 하나씩 맞추어가셨다.
가만.. 듣고보니 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게 전부 내 잘못이라고. 혹시 하나라도 내 잘못이 아닌 다른 이유는 없을까. 나는 나의 부실함이 여지없이 100프로 내 잘못이라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피해보려는 마음으로 내 축 처진 어깨에 대해서도 여쭈어보았다. 그러니 원장님 가라사대...
"이건 니 잘못인교. 자세는 유전이 아니랑게..."
졌다. 지난 20년 동안 잘못 물려받은 유산으로 생각했던 유전자의 탓이 아닌 나의 잘못된 자기관리 때문이라니.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 그냥 솔직한게 최고라는 심정에 아버지에게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론 아버지의 처진 어깨도 유전이 아니기에 고칠 수 있는 것이니 내가 말씀드리면 아버지 건강에도 좋을 테니까.
<뒷이야기>
아버지에게 그날 저녁 퇴근 후 말씀드린 후의 반응.
"거 보라. 내 니 잘못된 것은 다 니 탓이라고 했나, 안캤나. 거 꼭 잘 안된 건 부모탓 하더니만 그래 밖에서 망신당하니 속이 확 후련하디. 부끄럽지 않드나. 퍼뜩 엎드려 '아버지 죄송합니다'하고 사과안하나!'"
오늘 출근길에도 아버지는 똑같은 말을 하셨다. 그리고 그의 어깨는 여전히 축 처져있다. 내 것과 비슷한 각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