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들지 않는 아이

by 병아리 팀장

그는 타고난 품성과 능력에 비해 과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 그의 부모는 그에게 어떤 집안일도 시키지 않았고 명백히 그가 잘못한 일에 대해서도 타이를 뿐 제대로 혼을 낸 적이 없다. 매를 때리긴 커녕 손 한번 댄 적이 없고 혹시나 그가 기분나빠할까봐 듣기 싫은 말을 한 적도 없다. 언제나 그의 눈치를 살피고 그와의 다툼이 생겨 관계가 소원해지지 않도록 조심할 뿐이었다.

그렇게 그는 자라왔다. 4살이 넘어 기저귀에 실례를 해도, 침받기할 나이가 지나도록 침을 흘려도 그는 싫은 소리 하나 듣지 않고 쭉 자라왔다. 그렇게 그는 부모의 품에서 자라다 7살에 처음으로 부모의 품을 떠나 첫 사회를 접하게 되었는데 그곳은 다름아닌 유치원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아픈 경험을 하였다. 당연한 것처럼 자리에 앉아 맘에 드는 장난감을 독점하고 가지고 놀던 그에게 같은 나이 친구가 다가와 장난감을 빼앗아버렸다. 난생 처음 겪는 상실감에 그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그 아이를 쏘아보았지만 불만있냐는 듯 자신을 노려보는 친구의 눈빛에 겁먹어 이내 고개를 돌려 구석으로 도망가버렸다. 그렇게 그는 7살이 되어서야 자신의 것을 뺏기는 경험을 하였고 누군가에게 가진 것을 빼앗기고 눈치받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이후의 그의 행보는 사실상 그의 인생을 결정지어버렸다. 그는 아픈 첫 경험을 겪게한 사회에 관심을 갖고 적응하기보다는 가정을 위시한 자신을 위한 세계에 중심을 두고 성장해갔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집으로 돌아갔고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잘해주는 친구가 있으면 집으로 데려와 같이 과자도 먹고 게임도 했다. 잘 알지 못하는 무리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면 대뜸 겁부터 먹고 안절부절 못하기 일수였고 앞에 나가 발표를 하는 것을 병적으로 무서워하였다. 그는 특히 체육시간과 음악시간을 두려워하였는데 주변의 이목이 자신에게 집중되면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로 어려워하였고 이런 그의 면모를 눈치챈 악동들은 그를 대놓고 놀려대었다. 속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그는 몇번이나 하였으나 운좋게도 그에게는 소수의 친구 몇명이 있었고 그 덕에 학교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교실에 갇혀 생활하는 삶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의 불행은 교실을 벗어난 후부터 시작되었다. 감옥이라 생각했던 교실을 벗어난 그가 느낀 첫 감정은 자유가 아닌 혼돈이었다. 교실 내 무리들을 피해 살면 행복하겠다 생각했었지만 대학에 오고 난 후에는 자신을 제외한 대부분의 친구들이 여러 무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무리 안에서 밥을 같이 먹고 숙제도 같이 하고 시험공부도 같이 하는 모습을 보면 그는 학창시절 경험하지 못했던 고독과 소외감을 느꼈다. 이에 더해 메뉴얼 방식의 학습 수준을 넘어서는 전공 공부의 어려움은 그가 개인으로서 자신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근간을 뒤흔들어 버렸다. 첫 학기 받은 암울한 성적표를 보며 그는 더 이상 스스로의 능력으로 거저얻을 수 있는 것이 없음을 깨달았고 자신의 삶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 그가 선택한 것은 또 다시 퇴보였다. 그는 사회에 적극적으로 융합하여 경험과 사회생활이라는 큰 안목의 무형의 자산을 얻기보다 눈앞의 작은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알바와 과외를 택하였다. 20년이 넘도록 거저 주어진 것들로 살아오고 관성화된 학습으로 지식을 쌓아온 그에게는 도전이라는 미지의 바다에 깊이 입수할 용기와 폐활량은 없었다. 그는 알바와 과외를 하면서 학비를 벌며 자신의 저조한 학업성적과 인맥에 대한 핑계를 '시간이 없어서'따위의 말로 둘러댈 수 있었다. 이미 그때부터 그의 인생은 자신에게 관심도 없는 누군가의 불쑥 튀어나올지 모르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삶이 되었고 그렇게 그는 대학생활을 마치고 운좋게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본다면 겉으로 보기에 그의 삶은 그다지 실패했다고 보긴 어려웠다. 하지만 그의 추락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사회생활에 대한 감을 익히지 못한채 홀로 살아온 그는 이제 그 스스로도 돌이킬 수 없는 아집과 편견으로 가득찬 존재가 되었다. 융화하는 법을 익히지 못한 사내는 사내 회식과 발표, 워크샵에 있어서도 눈에 띄게 부적응하는 모습을 보였고 상사의 가벼운 지적에도 쉽게 위축되고 과민하게 반응하여 그에게 적의가 없던 사람마저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충만한 그는 괜찮은 여자 동기와 후임들 사이를 두리번거리며 머뭇거리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부랴부랴 제 자리로 도망치곤 하였다. 그렇게 3년이 지난 후, 인사고과에서 낮은 평가를 받은 그는 홀로 타부서로 전배가게 되었고 시키는 일이 아닌 직접 일을 찾아야하는 부서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사표를 내고 회사를 나와버렸다.

그 후 그의 소식에 대해서는 들은 것이 없다. 누구는 동남아로 가족과 함께 이민갔다고 하고 누구는 협동조합인지 봉사단체인지에서 가벼운 소일거리를 하며 홀로 살아간다고 했는데 이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가 과거에 했던 말이 떠오른다. 자신은 세상에서 마치 없었던 존재인 것처럼 지워지고 싶다고. 자신의 부재로 누군가에게 피해가 가지 않고 누구의 구설수에도 오르내리고 싶지 않다고. 그냥 어렸을 적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그 시절에서 멈췄으면 좋았겠다고. 그 때 그의 말을 들으며 한 때의 푸념으로 치부했지만 스무해가 넘어 소식이 끊긴 그를 생각하면 안타깝게 생각한다. 무엇이 그를 좌초하게 만든 것일까. 부모의 과도한 사랑? 내성적인 것을 넘어 대인기피적인 그의 성격? 그에게 몇 번의 행운이 더해지고 몇 번의 아픈 경험이 덜어졌다면 그의 인생은 바뀌었을까? 그의 나이 서른 다섯. 그의 세상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을지, 삶을 이어가는 그의 마음은 어떨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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