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세 아버지와 34살 아들의 티격태격 동거일기
우리집 가장에게는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데 그것은 병원에 가기를 몹시 싫어하신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 점은 본인 뿐 아니라 가족인 나에게까지 적용될 정도로 우리 아버지는 병원을 매우 싫어하신다.
2003년에 재수공부를 마치고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을 때, 나는 10년 넘게 써온 안경에서 해방되고 싶어서 한창 유행하였던(지금도 성행이지만) 라식수술을 받기로 하였다. 1년 늦게 캠퍼스 생활을 하는 것이기에 조금이라도 자신감있고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싶어서 안경없는 삶을 선택했다.
병원 예약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라식 수술을 받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아버지는 매우 노발대발하셨다.
"니 그거 얼마나 위험한지 아나? 아직 제대로 검증도 되지 않은 수술이라는 거 모르나? 지금은 괘안아도 나중에 몇년 지나면 니 눈 어찌될지 모른데이. 그래도 할끼가?"
당시 말투만 봐서는 수술비가 아까워서 그러시는 건 아닌 것 같고 병원가는 것에 대해 뭔가 부정적인 맘이 강하게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나중에 (어머니에게) 듣고보니 아버지는 어렸을 적 시골에 사셔서 병원을 잘 가지 못하였고 그것이 병원에 대해 필요 이상의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된 것이라나. 의사와 약사가 싸울 때도 은근슬쩍 약사 편을 드는 것도 그와 상관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어쨌든 나는 수술을 강행하기로 하였고 아버지는 그 이후로도 수시로 나에게 수술 포기를 종용하셨다. 수술이 얼마나 아픈 건지, 눈에 신경이 얼마나 많은데 거기에 손을 대면 어떻게 되냐는지, 안과 의사들은 시력교정 수술하면서 지들은 다 안경쓰고 있다든지, 친구 중에 안과 의사가 있는데 그 수술 믿을게 아니라는 말을 들었드는 등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부정적인 말을 총동원하여 나의 수술을 포기하게 하려 하셨다. 허나 이번만은 어머니도 내 편을 들어주셨고 나도 꼭 수술을 받고 싶어 포기하지 않았다. 그 동안 수험생활하면서 책보다가 안경이 코 아래로 떨어지면 정말 부숴버리고 싶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목욕탕 갈때는 어떻고? 뿌연 습기 속에 어딘가 어딘지 몰라 고생했던 적이 한 두번인가? 운동할 때는? 혹시나 얼굴 쪽으로 공이 오면 안경이 깨질까 무서워 얼마나 노심초사 많이했던가? 그런 안좋은 추억들이 많은 나에게 안경은 캠퍼스 생활 이전에 척결해야될 대상 1순위였다.
결국 수술날은 왔고 나는 시간에 맞춰 병원을 방문하였다. 원장님께 인사드리고 옷을 갈아입고 수술대에 오르려하는데 갑자기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는데 아버지였다. 수술 직전에 무슨 급한 일로 전화온건지 궁금 반, 짜증 반의 마음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다소 격앙된 감정과 함께 내 귀에 울려퍼졌다.
"니 다시 한번 생각해본나. 내 돈이 아까워 이러는게 아니데이. 사람 몸에 칼은 함부로 대는 게 아닌기라. 더구나 몸에서 젤 중요한 눈 아이가. 다시 집에 온나."
그래도 몸에 손을 대는 수술이라 나름 긴장하고 있는 이 찰나의 순간에 또 내 결심을 흔드는 악마의 목소리. 나는 아버지에게 "됐습니다."라고 짧게 얘기하고 끊었다. 그리고 수술대에 올랐고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
집에 돌아와 안대를 하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아버지가 방문을 열고 내 옆에서 또 잔소리를 하셨다. 앞이 보이지 않아 청각이 예민한 상태에서 또 잔소리를 듣게 되니 고문이 따로 없었다.
"니 앞으로 수술하려면 니 돈 내고 해래이. 애비가 그리 얘기했는데도 안듣고 기어이 수술을 해샀노. 혹시 결과 안좋아도 애비 탓 하면 안된데이. 먼놈의 자슥이 애비 말 이리 안듣노. 부모 속을 이리 썩이나. 대학 드가면 바로 공부 준비해야지 외모부터 신경쓰니 이 일을 우얄끼고."
흡사 랩과 같은 잔소리에 나는 귀를 닫았고 내 대답이 없으니 아버지도 지쳤는지 방에서 나가셨다. 다행히 일주일 경과 후 내 시력은 좋아지기 시작했고 만 1년이 지났을 때 1.0을 넘었다. 그래서 안경없는 삶을 무사히 시작할 수 있었다. 2008년까지...
2008년 후 학교 수업 발표중에 눈에 이상을 발견했는데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병원에 가 물어보니 원래 고도근시여서 다시 퇴행이 왔다고 하더라. 그 후 시력이 계속 나빠져 현재는 0.7까지 떨어진 후 멈춘 상태다. 일상 생활에 약간 불편함을 느낄 정도라서 지금은 안경을 쓰고 다닌다. 자세한 것을 볼 필요가 없는 활동, 예컨데 산책 등을 할 때는 쓰지 않아도 되지만 영화나 독서를 할 때는 필요한지라 대부분 안경을 써야 한다.
일이 이렇게 되니 아버지의 잔소리는 수술 전보다 더 많이 나에게 비수로 날아왔다. 애비 말 안들으니 이렇게 됐다는 둥, 이래서 병원은 꼭 아플 때 아니면 가면 안된다는 둥, 엄청난 잔소리 찜질을 듣고난 후 다시 안경과 함께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P.S 1 : 그런 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언젠가 아버지가 병원에 가게 되는 날, 내가 꼭 동행하리라. 잔소리를 할지 걱정을 할지는 모르지만
P.S 2 : 몸관리를 극도로 잘 하시는 우리 아버지는 매해 신체검사에 매주 골프, 등산등의 운동으로 건강을 잘 관리하신다. 아마 그 요인 중 하나가 병원을 싫어하셔서가 아닐지.
P.S 3 : 나중에 어머니께 들어서 안 것이지만 아버지는 주사를 맞는 것을 극도로 싫어(라고 쓰고 무서워라고 읽는다)하신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아무렇지 않게 수술한다고 했을 때 왠지 겁을 많이 주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