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부터 대학을 거쳐 직장 사회인에 이르기까지. 내가 좋아하는 이상형은 수수하고 예쁜 흙속의 진주같은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이 미처 그녀의 가치를 발견하기 전까지 내가 먼저 좋아하고 나만 그녀를 독점하길 바라였다. 이러한 내 성향은 비단 이성관 뿐 아니라 연예인, 영화, 책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이른다.
허나 불행하게도 나에게는 남들보다 앞서거나 뛰어난 선견지명은 없었나보다. 내가 괜찮다 생각했던 사람들은 곧잘 다른 사람들도 좋아하곤 했다. 번번이 좋은 사람을 놓치고 오래 혼자인 삶을 살다보니 혼자 열폭하는 것이 생활화됐다. 처음에는 먼저 그녀를 선점한 사람을 원망하다 이제는 당사자인 그녀를 싫어하게 되곤 한다. 그러다 그녀가 잘 안되길 바라는 일이 다수다. 맘속 한편에서 영원히 흙속에 묻히고 포기하고 살기를 바라곤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로 자기만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을 계속 두고 보고 있다.
그 사람은 넉넉치 않은 집안에 장녀로 안좋은 대학, 취업안되는 전공을 나와 박봉의 기업에 들어가 야근과 주말 근무를 종종 하며 빡센 삶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있는 대기업으로의 이직과 작가 등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불철주야 열심히 살고 있다. 3년이라는 시간동안 번번이 낙방을 거듭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그녀를 보면 아직 내가 닿는 범위 안에 있음에 안도하면서도 벗어나면 어떡하지 안달복달하게 된다. 아마 그녀와 만났다 헤어진 수많은 남자들도 이런 나와 같은 심정이지 않았을까. 끊임없이 타오르는 태양같은 그녀를 떠올리며 오늘도 나는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기도한다.
비좁은 땅을 벗어나되 너무 높이 날아오르지 말아라.
마음껏 날아보되 다시 땅으로 돌아오라.
스스로 더 잘 될 노력을 하기보다 남이 잘되지 않길 기도하는게 더 쉽기에, 실패와 좌절이 일상이 된 헬조선에서 타협이 도전보다 더 그럴듯하게 인식되는 현실을 핑계삼아 못난 모습만 늘어간다. 애정이 애증이 되기까지 얼마나 혼자 많은 시간 마음이 썩고 문드러지는 과정을 겪었을까 생각하면 이 세상에 한 명쯤은 나를 이해해주지 않을까. 신의 축복이 그녀의 성공보다 나의 사랑에 먼저 임하길. 허접한 글에 구차한 애원을 담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