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는 먹성이 정말 좋았다. 어렸을 때부터 사료를 주자마자 쉬지도 않고 정신없이 먹었다. 어린 나이었지만 딱딱한 개껌도 우둑우둑 씹어 너무나 잘 먹었다. 항상 굶겨 놓은 강아지 같았다. 하지만, 지독하리 만큼 다른 것들은 주지 않고 사료만 먹였다. 가끔 간식으로 주는 덴탈 개껌, 말린 닭고기와사과, 감 등 씨 없는 과일류와 고구마, 영양 보충 비타민 정도가 전부였다.
사료만 주게 된 이유는 개를 살 때 판매하시는 분이 사료만 먹어야 오래 살고, 잔병이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개가 사람의 음식을 먹게 되면 점차 사료를 안 먹는다고 했다. 특히 소금간이 되어 있는 음식에 입맛을 잃는데, 염분은 개들의 건강에 매우 안 좋단다.
사료만 먹이기로 결정해서 영양이라도 잘 공급해주려고 최대한 좋은 사료를 먹이려 노력했다. 개월 수에 맞게 급여량과 나이에 맞는 알크기를 정하고 영양소와 성분, 문제가 되는 것은 없는지 등을 검색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BHA, 방부제 등은 몇 년 전만 해도 특별히 이슈가 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터넷 평판이나 가격이 비싼 수입산 유기농 사료, 동물병원이나 펫 샵에서 추천하는 사료는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들을 고려한 후 신중히 결정해 꽤 오랫동안 급여했던 사료에서 문제 원료가 검출되어 충격을 받았다. 유치가 날 때 많이 줬던 개껌은 표백제를 비롯한 유해성분과 질 나쁜 소가죽으로 만들어졌다는 뉴스를 접하고 난감했다.
하긴, 사람의 먹거리도 장난을 치는데, 말 못 하는 동물들의 먹이는 오죽하랴 싶었다. 결국 견주들의 마음만 아픈 거다. 이런 문제들 때문인지 최근에는 유기농 식단으로 직접 조리해서 자연식, 보양식을 주는 견주가 더 많아진 것 같다.
식습관 훈련을 위한 노력
그래의 식습관 형성을 위해 만든몇 가지 규칙이 있었다.
첫째, 급여량과 밥 주는 시간을 정확히 지킨다. 어려서부터 개월 수에 따라 무게를 계산하여 정확히 주었다. 자율배식을 하는 강아지들도 있었지만, 그래는 너무 많이 먹어서 주면 주는 대로 다 먹을 것 같았다. 자동으로 시간에 맞춰 배식해 주는 기계도 있었지만,맞벌이라 주인으로서의 권위를 가지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먹이 주는 것 밖에 없다는 생각에 가족들이 직접 주면서 훈련시키는 방법을 선택했다.
둘째, 사람이밥 먹는 시간과 편차를 두고 강아지에게 밥을 챙겨줬다. 밥 먹을 때 가급적 식탁 근처에 오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인지 그래는 밥 먹는 시간에 식탁에 와서 음식을 달라거나 덤비지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지나며 마음이 약해진 남편이너무 매정하다며 과일을 먹을 때 나 몰래 슬쩍 챙겨주곤 했다.그래에게 과일을 주려고 일부러 바닥에 떨어뜨린 척하며 '실수!'라며 웃어 보이기도 했다. 일관되지 않은 교육태도는 그래에게 혼란을 주었다. 결과적으로 밥 먹을 때 내 곁에는 오지 않고, 남편에게 가서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래를 보며 견주도 일관된 교육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섯째, 밥 먹기 전에는 인내심 기르는 훈련을 했다.어릴 때부터 밥을 주고 '기다려!'를 시켰다. 가장 본능적인 것을 참고 이겨내면 다른 것들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지금은기다리라고명령하면 먹을 것을 앞에 놓고, 1분쯤은 충분히 인내할 줄 아는 강아지가 되었다.
그래의 먹성 덕에 다양한 훈련을 시킬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서너 가지의 공, 인형들을 놓고 찾아오라고 하면 해당 물건을 찾아왔다. 그때마다 사료 한 알이나 좋아하는 간식을 던져주었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니 그래는 자연스럽게 자기의 행동에 따라 보상을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의 단어에 익숙해지면 다른 단어를 익히며 다양한 명령어를 익혀나갔다. 이 방법으로 앉아, 먹어, 기다려, 손, 하이파이브 등의 단어를 훈련시켰다.
개는 사람의 말을 아는 것이 아니라 눈치나 분위기로 파악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적이 있다. 하지만, 훈련을 통해 사람 말귀를 알아듣는 것 같으니 개와 소통하는 것 같아 키우는 재미가 훨씬 더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