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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경 Jun 25. 2019

스위스에서의 시집 살이란?

신혼 5개월 차 일기.

시댁의 "시"자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고 했다.

내가 인터넷에서 본 후기들은 거의 다 그랬다. 심지어 어떤 글들은 남편은 괜찮지만 시댁 때문에 이혼하고 싶다고도 했다. 나도 그럴까 라는 생각은 었었지만 먼 미래의 일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 최근까지도 별 생각이 없었다.  

명절이 되면 삼촌들은 큰 테이블에, 아이들인 우리들은 중간 테이블에, 숙모들은 마지막 테이블에

따로 앉아서 밥 먹는 것도, 간장이며 물이며 일일이 부탁하는 삼촌들에 엉덩이 붙일 틈 없는 숙모들까지

자연스러운 명절의 일상이었다.


같은 여자지만 아이였던 나는 숙모들이 명절에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항상 비슷한 명절 풍경을 보면서도 이상하게 생각한 적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기적이었던 게 맞는 거 같다. 또래 사촌형제들은 남자이라는 이유로 앉아 있었고,

숙모들이 많이 있었기에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할 사람들은 많았다. 나이는 들었지만 나는 여전히 아이에 속해있었고, 작은 일이라도 시킬라치면 사촌들은 안 하는데 나는 왜 해야 하냐며 투정 부리며 숙모들을 모른척했다.


이렇게 이기적이었던 나는, 나는 커서 절대 시댁 가서 스트레스받는 그런 일들은 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다녔고 내 동생은 항상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현재의 나는 심지어 시댁과 같이 살고 있지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정도로 잘 살고 있다. 이제 함께 산지 5개월밖에 되지 않아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수도 있고 혹은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의 시댁생활이라 이렇게 느낄 수 도 있지만, 나는 정말 복 받은 것 같은 느낌이다.




며칠 전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고민인지, 행복인지하는 생각까지도 했다.

우리는 3층 집에 살고 있고, 1층은 우리가 2층은 공동 3층은 시댁이 살고 있는 나름의 분리된 생활이 가능한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층마다 부엌과 화장실이 따로 있어 청소와 빨래를 각자 하는데, 어느 날은 아침에 일어나니 빨래 거리들이 사라져 있었다. 시엄마가 빨래 거리 돌리면서 같이 빤 것이다.


아, 오늘 내가 빨려고 했었는데, 나름의 계획들이 있었는데 하며 뭔가 아쉬우면서도 이걸 내가 아쉬워야 할 상황인가도 싶었다. 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하기도 하고 얼떨떨하기도 했다.


아주 작은 일이었지만 한국에서도 누가 내 빨래를 해주는 경우는 잘 없었다. 20살 이후 줄 곧 밖에서 생활하였고, 스위스로 오기 전 2년 동안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였지만 한국에서 나의 엄마는 집안 청소를 하고 챙겨주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본인이 밖에서 일하기 때문에 집안일에는 거의 손도 대지 않았고 그래서 각자의 방은 스스로 청소하고 나머지 집안 청소는 언제나 딸인 내 몫이었다. 항상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같이 살고 있는 상황이라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가끔씩 이런 사소한 챙김을 받을 때면 진짜 결혼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외국이라 서라기보다 내가 정말 좋은 사람과 결혼하여 좋은 사람들과 가족이 될 수 있어서 그런 거 같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그와 강하면서도 여린 시엄마와 가족들을 보며 좀 더 결혼 결심을 굳혔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나는 남편, 시엄마, 시가족 이라는 단어들을 쓰기 싫어한다. 전부 부정적이게만 느껴져서,

그래도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제일 빠른 방법이기에 쓰긴썼지만 적절한 단어들을 찾아야겠다.



몇 개월 후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후회하고 있을 수 도 있겠지?

그래도 지금은 정말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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