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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ndmer Nov 25. 2023

세계지도를 펼치면 돈의 흐름이 보인다

다가올 기회를 읽는 30개국 세계 경제 기행


[ 글을 시작하기 전에 ]


최근 국제 사회를 움직이는 게임의 규칙이 바뀌고 있다. 냉전 이후 미국이 주도하던 국제 정세의 흐름이 크게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 미국이 교역 및 통상 협정, 우주 개발 정책, 특허 및 기술에 관련한 국제 규격 등을 정할 때는 G7회의 등을 거쳐 소수의 최상위 국가와 조율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들 국가와 의견을 조율하는 것만으로 국제 사회가 모두 동의했다는 평가를 받기는 어려워졌다. 


자연스럽게 G7 회의는 G11, G20 회의로 규모가 커졌고, 과거에 비해 더 많은 국가의 동의와 협조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제 이들 국가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국가들이 서로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또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야만 한다. 


이 사건의 발단은 중국의 경제 규모가 미국을 앞지를지도 모른다는 예측으로 인해 미국이 세계화라는 기조를 블록화라는 기조로 변화시켰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각국들은 새로운 정상화라는 형태의 세계 교역을 고민하게 되었고 앞으로는 이 흐름이 새로운 세계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경제를 읽는 방법 중에 하나로 지리적인 요건도 고민해야 하는데 이 점에서 이 책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그럼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Ⅰ. 영국이 300년간 세계 중심으로 군림한 비결


영국은 어떻게 세계 최강 국가가 될 수 있었을까? 그 배경에는 특허 제도가 있다. 


17세기까지 영국은 산업혁명을 이룰 만한 제조와 기술 여건이 없었다. 오히려 성숙한 제조 여건을 갖춘 곳은 유럽 대륙의 여러 국가들이었다. 


유럽에서는 이미 시계 공업과 철 가공업 등 제조업이 크게 발달하고 있었다. 참고로 당시 시계는 오늘날 스마트폰에 비견할 만큼 주요한 도구이자 일상생활의 가장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준 물건이었다. 


반면 영국은 농업 국가 수준에 머물러 있었기에 자국의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1623년에 기술자의 기술에 대가를 지불하는 특허 제도를 전격 도입한다. 


그러자 유럽 각지의 기술자들이 자신의 기술에 대가를 지불하는 특허 제도를 전격 도입한다. 


그러자 유럽 각지의 기술자들이 자신의 기술에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영국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기술자들이 역량이 결집되어 산업혁명을 촉발했고, 영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산업혁명은 영국이 나라 밖의 힘을 성장 발판으로 활용한 첫 번째 사건이었다. 


영국이 특허 제도를 강화해 세계 최강 국가의 반열에 오른 것을 보고, 이를 벤치마킹한 나라들이 있다. 


대표적이 나라가 독일과 미국이다. 독일은 전 세계에서 실용신안 제도를 처음 도입한 나라다. 


미국 역시 영국을 벤치마킹한 나라다. 미국은 헌법 1조에 특허 보호를 담아 천명하고 있다. 헌법 1조는 해당 국가가 숭고하게 지켜야 할 가치를 담고 있는 것이 통상적인데 그러한 헌법 1조 8절 8항에 특허 보호 제도를 명시한 것이다. 


이는 아버지 나라 격인 영국이 특허제도를 활용해 세계 최강 국가의 반열에 올라섰음을 인식하고 미국의 발전을 위해서는 유럽 각지의 역량 있는 기술자를 유치해야 한다는 판단에 기반하고 있다. 


Ⅱ. 한 청년의 꿈이 실현한 도시, 마카오


영국이 지배한 홍콩, 포르투갈이 지배한 마카오


마카오 반도가 전 세계인에게 알려진 것은 포르투갈 덕분이다. 마카오는 홍콩보다 300년이나 앞선 1540년대부터 포르투갈의 교역 기지이자 무역 거점 도시였다. 


16세기 포르투갈 상인이 마카오에 도착한 이후부터 이곳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해상 무역과 기독교 선교활동을 위한 주요 거점으로 활용되어 왔다. 


포르투갈 상인들은 처음에는 배의 화물을 말린다는 구실로 명나라 관리에게 뇌물을 주고 체류하다가 아시아와 본격적인 교역을 시작한 뒤로는 거금을 주고 교역에 필요한 땅을 임대했다. 


이후 매년 일정한 금액을 바치는 조건으로 포르투갈인의 마카오 체류는 공식적으로 허용되었다. 


외국 국가의 상인이 자국의 땅을 사용하고 싶다고 해서 이를 선뜻 내주는 국가는 없다. 


그럼에도 당시 명나라가 포르투갈인들에게 마카오 지역에 머물 수 있도록 허용해 준 이유는 그들이 해적을 토벌하는 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명나라 역시 유럽의 국가들과 교역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보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이 해적까지 토벌하자 포르투갈인들에게 나름의 배려를 해준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명나라의 조치는 결국 마카오가 300년 가까이 포르투갈령으로 편입되는 빌미가 되고 만다. 


마카오 카지노의 전설, 스탠리 호


카지노 도시 마카오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하나 있다. 바로 스탠리 호 회장이다. 


스탠리 호는 명문 출신으로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의 증조부는 네덜란드계 유대인으로 아시아와 유럽 간의 교역에서 많은 부를 축적했다. 


스탠리 호의 조부는 청나라 말기 홍콩 5대 상인에 포함될 정도였다. 이렇게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스탠리 호의 유년 시절은 하루아침에 바뀌고 만다. 


스탠리 호가 13살이 되던 해 그의 아버지가 주식 투자 실패로 큰 빚을 지게 되었다.


아버지는 베트남으로 도망쳤고, 절망한 두 형은 자살했으며 어머니 역시 전당포를 전전하며 간신히 생계를 유지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스탠리 호는 썩은 치아를 치료하기 위해 평소 아버지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친척을 찾아가 치료비를 부탁했지만 그들은 스탠리 호의 부탁을 단칼에 거절한다. 


이러한 냉대를 당하고 단 1센트가 없어 버스에서 강제로 하차당하는 수모까지 경험한 스탠리 호는 어린 시절 당시의 상황이 세상이 얼마나 엄혹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 자양분이 되었다고 스스로 말한 바 있다. 


마카오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스탠리 호는 다시 홍콩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스탠리 호라는 인물이 마카오에 와서 단기간에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다는 소식이 갱들의 귀에 들어가면서 갱들의 노골적인 견제가 심해진 탓이었다. 


1953년 떠밀리는 듯 홍콩으로 돌아온 스탠리 호는 마카오에서 벌어들인 수익으로 홍콩 부동산에 투자해 더 큰 부자가 된다. 


홍콩의 거부로 성장한 스탠리 호에게 일생일대 최고의 기회가 찾아온다. 


1962년 마카오에서 카지노 독점 사업권을 가지고 있던 타이킹의 후탁얌 회장이 사망한 것이다. 


카지노 사업권을 운영할 후임자를 찾던 마카오 정부는 스탠리 호를 주목했다. 스탠리 호는 마카오에서 사업을 하던 당시부터 정관계 인사들과 빈번하게 교류하던 터였기에 스탠리 호의 사업 수완은 이미 검증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막대한 재력을 갖춘 인물이었기 때문에 사업권을 획득함과 동시에 다양한 신규 투자를 감행할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있었다. 


Ⅲ. 스위스, 강대국 사이에서의 생존 전략


당시 스위스는 어떻게 영세 중립국 지위를 지켰을까?


스위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영세중립국 지위를 유지하면서 전쟁의 화마를 벗어날 수 있었다. 


당시 네덜란드와 벨기에도 중립을 선언했지만 이들 국가는 독일의 침공을 받고 국토가 점령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조약에만 기댄 중립국 지위는 그만큼 취약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위스는 어떻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해 갈 수 있었을까?


스위스가 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스위스 화폐가 기축통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국가가 자체적으로 화폐를 발행하지만 모든 화폐가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기축 통화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화폐 본연의 기능인 교환의 매개 수단, 가치의 저장 수단, 가치의 측정 단위 등의 역할을 무역과 국제 금융에서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은 전쟁을 위해 철광석, 석탄, 석유 등의 자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했다. 


독일 본토와 점령지에서 확보한 자원만으로 방대한 군사력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독일은 이러한 자원을 전쟁과 관련 없는 제3 국으로부터 조달받고자 했다. 


대표적으로 석유는 중동 지역에서 수입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결제 방법이었다. 독일에 석유를 판매하는 중동 지역 국가들은 독일 화폐는 물론이고 당시 기축 통화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미국의 달러나 영국 파운드로 결제하는 것조차 원하지 않았다. 


이들 국가는 당시 전쟁에 참여하고 있었으므로 전쟁 결과에 따라 이들 국가가 발행한 화폐는 언제든지 휴지 조각으로 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가치 저장 수단으로써의 기능이 위협받고 있던 이들 화폐는 교환의 매개 역할을 수행할 수 없었던 것이다. 


Ⅳ. 무역 요충지에 있는 싱가포르의 생존 전략


선박 수리업이 발달한 이유


교역과 금융의 중심지인 싱가포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제조 분야가 하나 있다. 


다름 아닌 선박 수리업이다. 많은 선박이 오가는 길목에 위치한 만큼 선박 수리를 하기에 최적화된 지역이 싱가포르다. 


선주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배를 수리하기 위해 기존 교역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장소로 이동하는 것 자체가 비용이고 부담이다. 


이 때문에 평소 선박을 운항하던 항로에 있는 지역에서 수리하는 것을 당연히 선호한다. 


무역 항로에 위치한 싱가포르에서는 선박을 빠르게 수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태풍 등 천재지변이 거의 없어 전천후 작업이 가능하다. 


오늘날 싱가포르가 세계적인 선박 수리 산업 및 해양 플랜트 산업으로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 덕분이다. 


고령화와 노후화의 문제


비약적인 성과를 보여왔던 싱가포르 역시 최근에는 다양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급격한 고령화다. 싱가포르의 고령화에 따른 헬스케어 지출은 2011년 39억 싱가포르 달러에서 2018년 102억 싱가포르 달러로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그뿐만 아니라 그간 싱가포르의 경쟁력의 원천이었던 각종 사회 인프라가 이제는 점차 노후화되어 막대한 재투자도 필요한 상황이다. 


싱가포르는 향후 10년간 철도망 확대, 창이공항 제5터미널 개발, 투아스 항구 개발 등 낙후된 인프라를 보완하기 위해 인프라 투자를 지속해야 할 상황이다. 


농업 부문에 대한 투자도 시급하다. 식품 수입 의존도가 90%에 달하는 싱가포르는 코로나 19 유행을 거치며 기초적인 농산물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를 계기로 싱가포르 내에서 식량 안보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2030년까지 자체적인 식량 생산 비중을 30% 수준까지 높이려는 목표를 설정했다. 


국토 면적이 작기 때문에 도시 내 농업 수경 재배, 수직 농업 등 농업 기술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다. 


Ⅴ. 제2의 중동 붐을 꿈꾸는 사우디 아라비아


먼저 사우디는 국가의 운영 체계부터 전혀 다르다. 일반적인 국가는 영리를 추구하는 경제 활동을 개인이나 기업과 같은 민간 부문에서 수행하고, 국가는 이들의 수익에 일부 세금을 부과해 국가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국가 살림을 마련한다. 


하지만 사우디는 경제 활동의 주체가 개인이나 기업과 같은 민간이 아니라 국가다. 국영 석유 회사가 국가의 절대적인 수익원으로 경제 활동을 직접 수행하고 민간은 국가가 벌어들인 수익을 나누어 갖는 구조다. 


물론 사우디가 건국 초기부터 이러한 구조를 갖추었던 것은 아니다. 석유 부흥기 이전 사우디의 재정 상황은 매우 열악했다. 


원래 이슬람교에서는 강제로 세금을 징수하지 않는다. 율법서인 코란에 따라 자발적으로 내는 세금인 자카트라는 세금만이 재정 수입에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이처럼 부족한 세원으로 공무원과 군대의 급여뿐만 아니라 국가 주도 SOC 건설 등을 하다 보니 1933년 즈음에는 국가가 거의 파산 상태에 이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캘리포니아의 석유 회사 스탠더드 오일에 사우디 석유 개발권을 고작 25만 달러에 양도하기도 했다. 


이는 사우디의 국가 경영체제를 바꾸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이후부터 사우디는 정부와 국민 세금 사이에 세금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일이 없다.


국민이 세금을 거의 내지 않기 때문이다. 사우디 재정 수입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원유 판매 수익을 바탕으로 국민들은 광범위한 혜택을 누린다. 


교육과 의료 서비스는 물론이고 전기 등 에너지도 싼 값에 제공받는다. 


석유 판매 수익의 상당액은 사우디로 들어간다. 사우디 국민은 연간 예산 편성에 대한 발언권이 거의 없으며 정부 또한 국민에게 지출의 일부만을 공개하고 원유를 판매한 수익 중 왕가 할당분이 어느 정도인지 공개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민 대부분은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구조에 대해 크게 불만을 드러내지 않는다. 


Ⅵ. 브라질은 과거도 지금도 기회의 땅이다. 


브라질에서 가장 먼저 기회를 찾으려 했던 나라는 포르투갈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라틴 아메리카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지 2년 뒤인 1494년 알렉산데르 6세 교황 주제 아래 지도상에서 대서양을 수직으로 갈라 동쪽은 포르투갈이 서쪽은 스페인이 지배하는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맺는다. 


그런데 조약이 맺어진 1494년 당시에는 남미 대륙에 브라질 지역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다. 


일부 학자는 당시 스페인보다는 항해술이 발달한 포르투갈이 브라질 지역의 존재를 알고 있었음에도 숨겼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무엇이 진실이든 간에 브라질 지역은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기준으로 동쪽에 있고 결국 포르투갈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다. 


포르투갈 보다 더 부강했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인근 지역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브라질로 향하는 포르투갈인은 더 늘어났다. 


18세기 초 포르투갈의 본토 인구가 200만 명 수준인 데 반해, 브라질로 이주한 인구가 40만 명에 달하게 되었다.


18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유럽 본토의 포르투갈보다 브라질이 경제적으로도 더욱 부강한 상황이 되었다. 


포르투갈은 처음에는 브라질의 급격한 발전을 지켜보기만 했다. 브라질과 포르투갈의 거리가 워낙 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통제하기가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당시 포르투갈 지배층은 브라질 경제가 커져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한다면 오히려 더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앙 6세 포르투갈 국왕이 나폴레옹의 침략을 피해 1807년 왕실을 브라질로 옮기면서 포르투갈 지배층의 생각은 변한다. 


왕실을 식민지인 브라질에 빼앗긴 포르투갈 본토의 지배층들은 다시 국왕을 되찾기 위해 움직였고 왕이 사라진 사이에 포르투갈 본토에서는 자유주의자들이 크게 늘어났으며, 브라질과의 경제적 격차는 더더욱 벌어지고 있었다. 


[ 글을 마치며 ]


산업혁명의 기반이 갖춰지기에는 기술자들이 모여들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기술자들이 모여들면서 지속적으로 융복합이 탄생할 수 있었고 국가는 이를 특허라는 제도를 통해서 보호해 주었고 더 많은 기술이 탄생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영국은 산업혁명이라는 기술적인 발전을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다른 유럽의 여타 국가들과는 달리 영국이 산업혁명을 주도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 현재의 산업혁명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고 대부분의 산업에서도 미국이 기술적으로 강국의 위치에 놓여있다. 


그 이유도 지리적인 이유와 정책적인 이유가 혼합해서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리적인 이유는 미국은 드넓은 대륙에 인구 밀도가 높지 않은 편이다. 이 때문에 이주민들에 대한 정책이 예전부터 개방이 되어 있었다. 


미국에는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고 이는 이미 미국 문화의 일부분이다. 


이들은 모두 공평한 기회를 잡을 수 있고 노력을 통해서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 자신의 생각을 시험해 볼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이주자들로 인해서 미국은 기술적인 융복합의 발전이 빠르게 탄생할 수 있었다고 보인다. 


그럼 앞으로는 어떤 지리적인 이점이 발생할 수 있게 될까?


지금까지 발전해 온 산업화는 분업화가 주된 목적이었다. 값싼 자본과 저렴한 노동력이 만나서 생산성을 극대화시켰다. 


다른 나라에 공장을 짓고 물건을 생산해서 배를 이용해서 자국으로 재수입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물가 상승 없이 물건을 소비할 수 있게 되고 생산국은 수출을 통한 국가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 


또 생산국은 공장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소비 수준이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중진국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되고 교육, 기술, 산업 모든 면에서 자연스러운 발전이 일어나게 된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분업화를 통한 세계화의 발전이 지속해서 발생할 가능성이 낮아지게 되었다. 


블록 경제로 말하는 프렌드 쇼어링과 리쇼어링으로 인해서 자국에 모든 생산 기지를 구축하겠다는 것이 현재 세계 경제의 흐름이다. 


이로 인해서 예전보다 많은 공장이 세워지게 되지만 수요는 이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도 존재한다. 


결국 예전보다 비효율적인 생산 과정으로 인해서 가격은 높아지게 되고 블록 경제를 통해서 타국의 물건은 높은 관세 때문에 경쟁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최종 소비자들은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지만 더 적은 재화와 서비스를 활용하게 된다. 


이 중에서 더 큰 문제는 미래 산업의 중요한 핵심 공장들은 선진국들을 위주로만 재편되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반도체 공장이 대표적이다. 모든 기기에 점점 더 많은 반도체가 사용될 것이라는 예측으로 인해서 반도체 공장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주요 정부들은 막대한 보조금을 기반으로 반도체 공장들을 유지하고 있고 반도체 가치 사슬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지금은 아직 윤곽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향후 5년 후에는 반도체 공장을 가진 국가와 가지지 못한 국가, 반도체 가치 사슬에 포함된 기업이 어느 정도 있는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의 기술적인 발전이나 경제적인 발전에 상당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어떤 형태로 나타나게 될지는 모르지만 분명 현재 시점에 변화는 발생하고 있고 진전되고 있다. 


앞으로도 꾸준히 복합적으로 생각해서 변화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도록 하자. 


또 여기에 있는 마카오나, 브라질, 스위스, 싱가포르의 사례도 가급적 좀 더 오래 기억해서 국가별 지역별 특징이나 인사이트를 복합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도 배양할 수 있도록 하자. 


참고 도서 : 세계지도를 펼치면 돈의 흐름이 보인다 ( 박정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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