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진정한 바리스타 되다.
고사장이 할아버지카페에 드나들고 대략 석 달 정도가 되었을 때입니다. 저는 고사장이 걱정을 한 대로 가게를 망해 먹지는 않았지만,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정말 일을 내고 말았습니다. 제가 시험 삼아서 휴대용 로스터기에 볶은 커피가 어찌나 향도 좋고 맛이 좋던지요. 저도 산 생활을 하면서 심심풀이로 작은 가마솥에 커피를 볶아본 적은 있었습니다만. 이렇게 여러 가지 조건을 따져서 제대로 볶아 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 후로 몇 번을 더 볶다가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처음에는 동네 친구나 단골손님에게 제가 볶은 커피를 선물 삼아 주었지요, 그러다 서서히 손님에게 팔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마음먹은 것은 꼭 행동으로 옮겨야 직성이 풀리는 ‘불같은 남자’입니다. 여러 날 계속된 집사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가 볶은 커피를 우리 카페에서 쓰는 그라인더 호퍼에 쏟아부었습니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던 듯, 제가 볶은 커피로 장사를 하기 시작했지요. 다만, 문제가 있다면 우리 딸사장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 문제였지요.
우리 딸사장이 가게의 커피가 바뀐 것을 안 것은 그로부터 이십일 정도가 지난 다음이었습니다. 원두를 주문해야 할 시기가 한참이 지나도 주문이 들어오지 않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원두 유통회사에서 사장인 저희 딸에게 연락했던 것입니다. 혹시, 원두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른 회사로 옮기거나 장사가 잘되지 않아서 지난번 주문한 원두가 쌓여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요. 그 무렵엔 아직 우리 딸이 회사에 다니고 있을 때 였습니다. 저는 한창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야 할 딸아이가 몹시도 황망한 얼굴로 가게에 나타날 때까지, 제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잘 몰랐습니다. 아니, 사실은 그깟 커피 원두 하나쯤 내 맘대로 한 것이 무슨 큰일일까 싶었지요.
그때, 우리 딸의 눈을 한번 보셨다면 절대로 잊지 못하실 겁니다. 두 눈에서 파바박 파란 불꽃이 일더니, 이 애비를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 이글거렸지요.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제 녀석은 빼도 박도 못 하는 우리 부부의 딸이고, 우리 부부는 저를 낳아준 엄마, 아빠인데요. 제 옆에 있던 우리 집사람은 결코 이 사달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을 테지만 말입니다. 가족들 사이에서 한바탕 언성이 높아졌습니다. 지금이라도 호퍼의 원두를 바꿔 넣으라는 딸과 못 바꾸겠다고 오기를 부리는 아빠. 안 그러면 지금이라도 가게 문을 닫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딸과 어차피 문 닫을 거 여한이라도 없도록 나를 한 번만 믿어달라는 아빠, 장사가 장난이냐는 딸과 사람들은 맛있다고 했다는 아빠. 창고에 쌓인 유통회사의 원두들은 어떻게 할 거냐는 딸과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아빠, 그리고 그게 돈으로 얼마나 되는 줄 아느냐고 다시 언성을 높이는 애들 엄마가 저마다의 핏대를 올리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우리 부부의 또 다른 상전인 아들아이가 해외 출장을 나가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마침내.
우리 집에 제 고집을 꺾을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아빠, 마음대로 해. 딸아이가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습니다. 하지만, 결코 유쾌한 승리는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가장 큰 맞수인 딸사장이 그날부터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눕고 말았으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딸아이가 정말로 곡기를 끊고 앓아누우니, 서슬이 퍼레서 아득바득 기어오를 때 보다 훨씬 더 무섭고, 걱정되었습니다. 우리 딸 사장이 워낙 극성맞게 밖을 쏘다니며 아픈 내색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알고 보면 그리 건강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크고 작은 수술을 한 것도 여러 번이었고, 병원도 자주 들락거렸지요. 자칫하다가는 딸사장에게 원망을 듣는 것은 둘째치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게 생겼지 뭡니까. 그렇다고 아빠로서 딸아이에게 맥없이 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저마다 한 성격 하는 아빠와 딸 사이의 기싸움에 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사장의 말대로,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바리스타일 배워놓지 않으면, 제 인생에 두 번 다시 이런 기회는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은 다름 아닌 의정부 고사장이었습니다. 어쩌면 한치 한 푼 안 틀리고 이 아빠만 고대로 빼다 박았는지, 고집스럽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딸아이를 고사장은 여러 날에 걸쳐서 설득했습니다. 늦은 밤마다 우리 부부를 찾아와서 진실로 친구가 되어주고, 마음을 사귀어서 이해를 시켰던 방법으로 말입니다. 덕분에 지금껏 할아버지카페의 사장이라고 떵떵거릴 줄 알았지, 커피에 대해서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던 우리 딸 또한 새롭게 커피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지요.
그리고 저 자신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여전히 제 로스팅 실력을 신뢰할 수 없다는 딸에게 고사장은 조금은 허탈한 듯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로, 저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얘야, 커피만 삼십 년 넘게 한 나도 생각할수록 섭섭한 이야기이긴 하다만. 그래도 어쩌겠니. 사실은 사실이라고 말해야 하고, 잘하는 건, 잘한다고 해야지. 그래서 내 생각이긴 하다만. 너희 아버지 딴 거는 모르겠고, 커피 로스팅하는 건, 신동이다. 신동.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제 자식 놈은 하나같이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습니다. 딸아이가 그 자리에서 못 믿겠다는 듯 깔깔댔습니다. 젊은 사람도 아니고, 밥맛도 잘 모르는 노인이 무슨 재주로…. 우리 집 딸 사장도 알고 보면 요즈음 젊은것들이지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제 아비를 무시하고 얕잡아 보는 것이 낯빛에 역력했습니다. 그러다, 난감하다는 듯 해외에 나가 있는 제 동생에게 곧장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들놈은 조금 다를 줄 알았더니, 그 녀석마저 똑같았습니다. 어이가 없다며 한참을 웃더니 한국에 가서 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잘 마무리되었느냐고요? 네, 그럭저럭 잘 마무리가 되긴 했습니다만. 그 후로 저는 출장에서 돌아온 아들놈과 함께 이름 있는 로스터리 카페 몇 곳을 찾아갔습니다. 서울도 몇 곳을 찾아갔고, 멀리 속초에 있는 곳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들놈은 정말로 우리 아빠가 영재인지, 아닌지를 가게 주인에게 물어서 확인하더군요. 세상, 이렇게 괘씸한 자식 놈들이 어디에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의심이 많고 소심한 것도 전부 저를 닮아서 나온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