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할아버지카페 딸 Oct 03. 2022

할아버지카페에는 정말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또 하나의 가족, 손님 이야기 

한창 바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저 또한 나이가 나이인지라 피곤하고 지치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면, 쇼윈도 뒤편의 작은 휴게 공간에 길게 누워서 잠시 몸을 뉘는 그것만큼 좋은 휴식도 없습니다. 세상 이런 극락이 없지요. 스마트폰을 만지작대며 조명섭 군 노래도 듣고, 요즘 한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뉴스도 찾아봅니다. 그러다 하품이 나오면 잠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합니다. 


하지만, 나의 극락은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저 대신 가게를 지키는 딸사장이 세상 살갑게 손님을 맞이해도 꼭, 저를 찾는 손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손님 중에는 제가 잠시 휴식을 취한다는 이야기에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고 조심스레 딸아이에게 주문을 맡기는 손님도 있습니다만. 때로는 참 야속하다 싶은 손님도 있습니다. 가게 이름이 ‘할아버지 카페’여서 들어왔는데, 정작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는다고 꼭, 한마디를 하고야 마는 손님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저 또한 마음 편할 리 없지요. 결국, 누워 있던 제가 카운터 위로 얼굴을 빠꼼히 보이며 한마디를 합니다. 손님, 저 여기 있어요. 십 분만 좀 쉬다 나가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때때로, 저의 양해 말씀에도 불구하고 꼭 휴게실까지 들어오셔서 누워 있는 저를 일으켜 사진을 찍거나 악수를 청하는 손님들이 있지요. 처음에는 그런 손님들이 조금은 부담스럽고 불편하게 여겨졌던 것이 사실입니다만. 지금은 그마저도 퍽 재미납니다. 가만히 보니, 손님들 나름대로 추억을 만드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 나이만큼을 살다 보니, 그 짧은 시간, 그 아무렇지도 않은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마음 깊이 느끼지요. 그래서 마다할 수가 없습니다. 제 한 몸 바쳐서 손님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습니다. 게다가 손님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막연히 그리고 있던 환상이나 동경의 세계를 다른 누구도 아닌, 저를 통해 발견한다는 사실만으로 고맙기도 합니다. 와, 정말이다, 정말 수염이 하얀 바리스타 할아버지가 계신다. 그러고는 아이들처럼 환호성을 지릅니다. 

     

제 아이들은 이미 나이가 먹어서 마흔을 훌쩍 넘긴 지 오래입니다. 그야말로 아줌마 아저씨이지요. 우리 집 막내인 며느리가 어리긴 해도 그 또한 밖에 나가면 어엿한 성인 대접을 받는 ‘어른’입니다. 그 때문일까요? 제 주위에서는 이렇다 할 젊은 친구들을 만나볼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아이돌 친구들이 제가 아는 젊고 어린 친구들의 전부이지요.  그러다 카페를 하고부터는 텔레비전에서나 볼 법한 젊은 친구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가끔은 젊은 친구들의 짙은 화장, 제가 젊은 시절에 상상도 못 했을 피어싱이나 문신, 그리고 무엇보다 노랗고 파란 염색 머리에 놀랄 때도 있습니다만. 정작 친구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예전과는 다른 새로운 눈으로 요즈음 젊은 사람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요즈음 것들은 전부 이럴 것이다’ 하고 오랫동안 마음속에 막연하게 품고 있던 오해들을 내려놓게 되는 것이지요. 

     

저는 노인이라서 굳이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더라도 어른 앞에서 지켜야 할 예의범절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요즈음 친구들에게서는 그와 같이 형식적인 예의범절을 찾아볼 수 없지요. 그 때문에 가게를 개업하고 처음 얼마 동안은 젊은 친구들이 저를 대하는 방식이 무척이나 껄끄럽고 불편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야속한 상황이 생기면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속으로는 ‘쯧쯧, 누구네 집 자식인고….’ 하며 사람들의 귀에 들리지 않는 흉을 자주 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차츰 친구들을 지켜보니, 그들에게는 저희 기성세대에게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솔직함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틀에 박힌 예의범절 대신 그 솔직함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조금 철이 없다 싶을 만큼 막무가내로 휴게실에 들어왔다가도, 나중에는 정말로 피곤하고 지친 할아버지를 이해하고 걱정해주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바쁜 할아버지 바리스타나 할머니 마담님을 대신해서 자신들이 음료를 마시던 컵이나 접시를 정리해서 가져다주는 것은 물론이고, 행주를 받아다가 자신이 앉았던 자리까지 깨끗하게 정리를 하고 떠나기도 하지요. 그렇다고 이 친구들이 늘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다음 주에는 또 언제 그랬냐 싶게 저희끼리 삼삼오오 몰려와서는 콧구멍만 한 카페가 떠나갈 듯이 까르륵거리며 어찌나 이 노인네들 부려 먹는지요.      


그래도 저는 이 젊은 친구들이 어찌나 반갑고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길을 가다가 이 친구들이 건네는 인사는 -우리가 젊은 시절 동네 어른들에게 마지못해 어려운 마음으로 건넸던 인사와 달리- 정말로 할아버지가 반가워서 건네는 인사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경쾌한 말소리와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지요.   그리고 이 적지 않은 나이에 새삼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 둘도 없이 근엄하고 무거운 예의범절이나 규칙 보다, 그저 마음에서 따뜻하게 우러나오는 진심이 더 큰 무게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지요. 

이전 11화 할아버지 바리스타의 탄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