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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카페 딸 Oct 04. 2022

내 나이 일흔에 커피 맛을 알았네.

또 하나의 가족, 손님 이야기

우이동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는 사실, 할아버지카페에서 팔지 않습니다. 할아버지카페를 지나서 북한산 쪽으로 한참을 더 올라가야 맛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 커피를 판매하는 곳은 경치 또한 강북, 아니 어쩌면 서울에서 제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때로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고 산 아래로 굽어보는 서울의 야경은 더 이상 비길 때가 없습니다.      


바로, 도선사 자판기에서 파는 다방 커피입니다.       


그 비율마저 환상입니다. 제 짐작이긴 하지만, 아마도 티스푼으로 인스턴트커피 두 스푼, 설탕 두 스푼, 그리고 프림 두 스푼이 알맞게 배합되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가격마저 최고입니다. 제가 카페를 하기 전까지는 300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데, 지금은 얼마쯤 하는지 잘 모르겠군요.   그렇습니다. 사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아니 요즈음은 전 세계인 모두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가 최고로 치는 커피는 -커피 애호가들이 최고로 치는 코나, 코피 루왁, 게이샤 같은 커피와는 거리가 먼- 우리나라 커피믹스입니다. 사실은 저 또한 달달한 옛날 맛이 그리울 때는 입맛을 다시며 노란 스틱 봉투에 든 커피믹스를 떠 올리곤 합니다.

      

그것은 저희 집사람의 형제들인 처남들과 처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가 맨 처음 카페를 차렸을 때, 가장 곤란함을 느끼고 본의 아닌 고생을 했던 사람들도 처남들과 처제입니다. 그들의 말대로 일평생을 마셔서 혀에 인이 백인 인스턴트커피를 하루아침에 끊고 세상 쓰디쓴 검정 물을 들이켜려니 얼마나 고역이었겠습니까. 게다가 제가 직접 로스팅을 하게 된 이후로는 얼마나 신이 났는지, 온 집안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무조건 우리 집에서 볶은 커피를 선물로 주었지요. 나중에는 처남들 사이에서 볼멘소리까지 종종 나왔지만 그들의 누나인 우리 집사람이 오죽이나 무서워야지요. 천성이 워낙 무던하고 착한 우리 처남들은 누나 말에는 모두가 꼼짝을 못 했습니다. 찍, 하는 소리도 못 하고 누나의 말을 따라야 했습니다. 어디 눈에 보일 때뿐인가요. 누나가 없는 사무실이나 집에서도 우리 처남들은 참으로 성실하게 우리 집에서 가져온 커피를 제가 정해준 용량에 따라서 마셨습니다. 물론, 취향에 따라서 꿀이나 설탕을 첨가하기는 했습니다.      


그리고 그럭저럭 만 삼 년이 흘렀습니다.      


일평생 인스턴트커피만을 마셨던 우리 처남과 처제는 요즈음 들어 이렇게들 말합니다. 커피의 참맛은 달짝지근한 크림과 설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쓴맛 끝에서 쌉싸래하게 우러나오는 오만가지 맛과 향취가 진정한 참맛이라고요. 그래서 심지어 저의 셋째 처남은- 네, 그렇습니다. 우리 가족이 가게를 개업할 때, 저와 함께 여러 가지로 전우애를 다지며 물의(?)를 일으켰던 그 처남입니다.-예민한 코로 오렌지 냄새가 난다던가, 나무 향이 난다던가, 때로는 산미가 어떠하다는가 하는, 제법 전문가 다운 면모를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가끔은 커피에 대해 잘 모르는 친구나 동료들을 데리고 와서 어깨를 으쓱하며 처남이 새로 경험하게 된 ‘커피의 세계’를 자랑하곤 합니다.      


 제 주위의 지인들 또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커피 맛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카페를 하게 된 이후로 가게에 발길을 하는 것이 꽤 어렵고 힘든 일이 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우리 부부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좋지만, 도선사에서 파는 커피의 열 배쯤 되는 가격에, 온통 쓴맛 가득한 커피를 마셔야 하는 것이 여간 부담 이어야지요. 그러다, 나중에는 집사람이  우리집에 찾아온 지인에게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막무가내로 설탕을 타서 내는 커피를 억지로 받아마시게 했습니다. 마치 텔레비전 광고의 선전 문구가 생각나는 군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말입니다. 한잔, 두 잔…. 그렇게 커피와 친숙해진 지인들은 나중에는 아예 우리 가게에 당신들 몫의 커피잔을 두고 다니는 경지에 이르렀지요. 알고 보면 우리 부부와 알고 지낸 지인들 또한 우리 처남들과 처제들과 같은 경험을 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실, 사람들의 눈에는 제 이야기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고작해야 커피믹스 대신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된 늙은이들의 이야기 정도일 테니까요. 하지만 제 생각에는, 300원짜리 커피믹스의 맛 대신, 진짜 커피의 맛을 알게 된 것은 한 사람의 세상이 바뀐 것이나 다름없는 이야기입니다. 커피믹스 회사의 사장님께는 참, 죄송한 이야기지만, 커피믹스는 마시는 순간에만 달짝지근할 뿐입니다. 게다가 뒤따라오는 텁텁함에 자꾸만 물을 들이켜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카페를 찾아오는 여러분께 제가 대접하는 커피는 그저 쓴맛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처남의 말대로 쓴맛 다음에 찾아오는 오묘하고 쌉싸름한 맛이 커피의 진미입니다. 마치 우리 인생처럼요. 커피 맛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이제 인생을 즐길 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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