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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카페 딸 Oct 04. 2022

할아버지도 형님, 누나가 있다.

또 하나의 가족, 손님 이야기

올봄이던가요. 사람 챙기는데 한없이 게으른 딸사장을 재촉해서 발길에 뜸한 단골손님들께 문자와 전화로 안부를 물었습니다. 특히, 저보다 연배가 높은 형님들과 누님들에게 저를 대신해서 우리 딸이 드리는 안부였지요.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저는 1947년생입니다. 정해생 돼지띠이고 2022년 올해로 일흔여섯 살입니다. 젊은 친구들은 그저 일흔여섯 살이라는 제 나이만으로도 숨이 뒤로 넘어갈 듯 놀라는 시늉을 하지요. 그러나 우리 할아버지카페를 찾아오시는 형님과 누님들의 나이로 보자면, 저는 그저 귀여운 막냇동생 정도의 나이일 뿐입니다.      


그런데, 한참 동안 문자며 전화를 걸던 딸사장의 얼굴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러더니, 평소 눈물도 별로 없는 아이가 탁자에 이마를 대고 흑흑 흐느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찌나 놀랐던지요. 얘, 왜 그러니? 어디 아파. 곁에 있던 제 엄마가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딸아이가


방학동 어르신 돌아가셨대


하고는 더 큰 소리로 흐느꼈습니다. 저도 모르게 기운이 빠져서 손에 쥐고 있던 머그컵을 놓쳤던 기억이 납니다. 안사람은 커피를 엎질렀다고 잔소리를 늘어놓고, 저는 그게 대수냐고, 버럭 소리를 질렀지요. 가게에 손님이 없던 시간이었기에 망정이지, 누가 보면 저희 집에 큰 일이라도 난 줄 알았을 겁니다. 아니, 큰 일은 큰 일이지요. 넬 모래 아흔을 바라보시는 어르신이 한 계절 사이에 명을 달리 하셨으니까요.


생전의 방학동 어르신은 장난기도 많고, 농담도 잘하셨습니다. 그래서 댁의 자제들보다도 한참 어린 딸사장의 버릇없는 농담도 척척 받아넘기셨습니다. 게다가 세상, 둘도 없는 로맨틱 가이였습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사랑꾼이라고 부르나요? 플라시도 도밍고의 신사적인 목소리를 좋아하셨고, 이따금 집에 계신 아내를 위해서 원두나 샌드위치를 사가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방학동 어르신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 정릉 어르신이 계셨습니다 두 어르신은 유치원부터 평생을 함께한 동무입니다.  두 어르신이 사는 동네를 옛날 택호처럼 어르신이란 호칭 뒤에 붙여서 다들 그렇게 부릅니다. 매주 화요일마다 할아버지카페를 다녀가셨지요. 그런데 지난겨울, 방학동 어르신이 병원에 입원을 한 후로는 정릉 어르신만 드문드문 얼굴을 비치셨지요. 그때마다, 걱정과 수심이 하나 가득 이었습니다. 코로나 난리 통에 보호자 말고는 면회가 안되니, 방학동 어르신의 얼굴조차 볼 수 없다고요. 때문에 저희 가족이 챙겨 보냈던 쿠키나 군것질 거리도 간호사실에 맡겨놓고 돌아왔다고 말이죠. 제 기억에 두 어르신의 안부를 마지막으로 확인한 것은 그 무렵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두 달이 채 안된 사이에 그와 같은 비보를 들었지요. 아무리 연세 많으신 어르신의 죽음을, 좋을 호자를 써서 '호상'이라 한다지만, 이 세상에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웃고 말하며 존재했던 누군가를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비통하고 슬픈 일입니다. 그 후로는 정릉 어르신도 할아버지 카페에 발길을 끊으셨습니다. 연락을 두어 번 정도 더 드린 것으로 아는데, 통화도 되지 않고, 문자도 답장이 없습니다.


그래도 아직, 많은 어르신들이 할아버지 카페를. 그것도 정정하신 걸음으로 찾아주십니다. 어른들을 볼 때마다, 제가 아직 나이가 어린것이 다행이거니와  즐거울 때가 더 많습니다. 우선은  날마다 등산복 차림으로 나타나서 가게 유리문 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최 여사님이 있습니다. 자그맣고 마른 체구와 달리, 소싯적에는 중장비를 운전한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랑삼아서 가게 손님들에게 종종 젊을 적 사진을 보여주는데, 판탈롱 차림에 커다란 굴착기에 기대어 서 있는 모습이 상당한 멋쟁이입니다. 저와는 대략 열 살쯤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아는데, 사람들이 없을 때는 저를 ‘동생’이라고 부릅니다. 집사람은 저더러 그런 최 여사님께 누님, 하고 불러드리라는데, 수줍음이 많고 영 성품이 뻣뻣한 저는 그게 잘 안됩니다. 입에서 맴돌다 말뿐이지요. 그러면 최 여사님은 한참을 기다리다 손사래를 치며 새침해지곤 합니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 카페와 이웃하는 건물에도 아흔이 넘은 어르신이 계십니다. 우리가 보통 원봉 어르신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집의 단골이기도 하지만, 어르신보다 한 살이 많은 부인께서 팥빙수를 무척 좋아하십니다. 종종 우리 집에 들러서 주문해가시지요. 저하고는 딱 열네 살이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종종 제가 속없이 나이 이야기를 하면 짓궂게 장난을 치곤 하십니다. 자네가 해주서 응애, 하고 태어났을 때 말이야, 나는 개성으로 중학교 시험을 치러 가지 않았겠어, 하고요. 그러면 저는 참 멋쩍게 웃고는 합니다.  때때로 우리 딸 사장은 이 어른을 일기 할아버지라고도 부릅니다. 왜냐고요? 청년 시절부터 근래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일기를 쓰신 것이 당신의 더없는 자랑이기 때문이지요.  저는 한 번도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칠십이나 팔십이 넘은 한 사람의 일생을 글자로 기록해서 쌓아놓은 그 느낌은 어떨까, 하는 생각 말이죠.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 할아버지카페를 잊지 않고 찾아주시는 것은 무척이나 고마운 일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발걸음이 뜸하시거나 소식이 없으면 그것만으로도 무척 불안하고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앞서 소개한 어르신들이 아니더라도 때때로 연락이 닿지 않는 사이, 생각지 못했던 소식을 접하게 되면. 저와 제 아내 또한 말할 수 없이 상심이 큽니다. 우리 부부 또한 나이가 많아서 앞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기대하는 그것보다도 훨씬 짧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만. 그보다 앞서는 마음은 기나긴 삶의 기억을 간직한 한 사람이 사라지는 것, 그 자체로 몹시도 서글프고 허무한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어르신들의 나이의 수가 많아서가 아닙니다. 사람의 나이는 시간의 흐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르신들이 살아온 시간에는 저마다의 삶이 녹아있습니다. 누군가는 그저 대수롭지 않게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죽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어쩌면 또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왕후장상이 아닌 다음에서야, 사람이 사는 것이 다 거기서 거기지 무어 그리 특별할 것이 있느냐고.      

하지만, 이 세상의 누구라도 자신이 살아온 삶이 특별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이 세상에 이름 없이 왔다 간들, 나의 생일이 특별하지 않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나의 부모님, 나의 형제, 나의 친구들, 그리고 나의 첫사랑이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또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그 모든 사람과의 기억이 모여서 만들어진 나의 삶은 또 얼마나 특별할까요?    

  

할아버지카페를 찾는 할아버지 바리스타보다 나이가 많은 손님들의 이야기가 특별한 이유 또한 여러분의 삶이 저마다 특별하고 소중한 이유입니다. 제가 도인 공부를 해서 배운 대로라면, 이 세상에 당연하게 주어진 시간은 단, 1분 1초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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