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눅에 대하여
내가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학생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대학이름이 주는 경외심 때문이었을까. 요즘은 학교이름이 적힌 점퍼를 많이 입는 것 같은데, 내가 어릴 적엔 학교배지를 외쪽 가슴에 달고 다녔다. 우리 집은 역 앞에서 꽤 손님이 많은 중국집을 했었는데, 이따금 손님 중에 이름 있는 여대의 배지를 달고 들어오는 손님들이 있었다. 그럴 때면 자장면 한 그릇을 시켜도 연신 그 손님을 힐끗거리면서 쳐다보게 되었다. 뭔가, 고귀한 공주님을 본 느낌이랄까?
나는 그런 마음을 아주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때문이었을까. 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이름 있는 여대를 나온 직원을 만나게 되면, 직급이 같은 동갑이거나 나이가 어린 직원이라도, 괜스레 우러러보는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나도 모르게 쪼그라드는 듯한 위축감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나의 태도는 이내 호구의 꼬투리를 잡히는 빌미가 되었다.
나는 그가 나를 동갑이라며, 친구 하자는 것이 못내 고마웠다. 나처럼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아무런 격의 없이 대할 수 있는 친구의 자신감이 몹시도 부러웠다. 아마도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의 품위(?)라는 것이 저런 것일까? 싶었다. 하지만, 그건 평택 옆의 오산이었다. 차라리, 평택이면 아파트 투자라도 하지... 싶었다. 아무튼, 그 애는 나에게서 분명 만만한 싹을 보지 않았나 싶었다. 이따금 말도 안 되는 갑질을 할 때가 있었다. 괜스레 전화를 걸어서는 밥을 얻어먹고 말 한마디 없이 사라진다던가, 회사에서도 이유 없이 나를 불러놓고는 한참을 서 있게 하다가 내려가라고 한다던가... 하! 그런 행실머리가 알고 보니 제 무리에서 나를 놀잇감으로 삼으려는 속셈이란 걸 안 것은 회사를 그만두고도 한참 뒤였다. 왜 그런 억울한 일의 낌새는 언제나 늦게 눈치채는 것인지 모르겠다.
분명 좋은 여대를 나왔더라도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을 텐데, 어찌 된 영문인지 내가 만난 사람들은 죄다 그렇게 막무가내인 사람들이 많았다. 똑똑하고 지적이기보다는 자기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 그게 아니면, 소박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기를 눌러 자기 발아래 두고자 하는 가스라이팅 범죄자 같은 사람들. 도대체 그녀들의 학벌은 어디에 쓰이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 지경이었다. 보고 있나? 당신들.
내 나이가 중년에 접어들면서 이제는 정말 격의 없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언젠가, 그 옛날 정말 E대에서 메이 퀸을 했다는 손님하나가 내 가슴속을 후련하게 하는 말씀 한마디를 했다. 아휴, 사람들이 몰라서 그래. 나이 사십넘으면 시골에서 초등학교 나온 여자나 E대 나온 여자나 주책맞기는 매 한 가지야. 나는 그 말씀에 입에 머금었던 커피를 왈칵 쏟을 뻔했다. 아닌 게 아니라, 중년이 되면, 학벌이나 지위로 삶을 영위하는 시기가 지나버린다. 그보다는 정말 우리 집 아파트가 몇 평인지, 월소득이 얼마인지, 노후준비가 얼마나 되어 있는지가 사람을 판가름하는 시기가 되어 버린다. 좋은 대학을 나와서 고고한 젊음을 보냈더라도 철이 들지 않으면 하찮아 보이기는 미미한 학벌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그 어른의 말을 고대로 빌리면,
철 지나서 핀 겹사쿠라 꽃 같다나? 나설 때, 못 나설 때 가리지 못하고 화려한 것만 뽐내는 그런 부류의 인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