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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두 명 중 48등의 미래

주눅에 대하여

by 재요

나의 학교 생활의 성적에 의해 평가된 이래, 나는 줄곧 쉰두 명 중 48등이었다.


남들은 창피하게 여길지 몰라도, 나는 문득문득 내 아래 등수였던 아이들이 누구였는지 궁금하다. 겉으로 보면 다들 멀쩡하고 잘 나서, 나 보다 못한 사람이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줄곧 ADHD 성향이 있었던 탓에 학교생활에 관심이 도통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중간고사, 기말고사의 시험범위가 왜 있는지 몰랐다고 하면, 짐작이 갈까? 당시, 큰 이모네 사촌 언니가 내 공부를 가르치며 '너 나중에 뭐가 될래?' 하고 물으면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김완선'이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아! 생각해 보니까, 시험범위의 필요성을 가르쳐 준사람도 언니였던 것 같다.


외톨이의 최고 장점은 아무도 나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니, 내가 사람들 앞에 나서서 튀는 행동을 해도 '저 애는 원래 그러려니'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숙제나 준비물을 잘 가져오지 않는 아이 이거나, 실기시험 준비를 안 해 오는 상습범 정도로 생각했다. 고등학교 수업시간은 산만하고 참을성 없는 나에게 거의 살인적인 인내심을 요구했다. 그래서 점심시간 이후, 수업시간에는 거의 잠만 잤던 것 같다. 그게 아니면, 맨 뒤에 있는 내 책상을 교실뒤로 안 보이게 밀어놓고 탈출을 감행했다. 그리고는 버스를 골라타고 서울 오만 곳을 떠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혼자 있는 시간은 나를 성숙하게 만들었다.


영등포에서 버스를 타고, 노량진이나 용산에서 강남으로 가는 버스를 다시 갈아탔다. 종로까지 와서 홍대나 신촌으로 가는 버스를 탈 때도 있었다. 그 버스들을 타고 시내를 돌자면, 학교에서는 그렇게 가지 않던 느린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버스의 뒷좌석은 언제나 내 지정석이었고, 사색의 공간이었다. 그때 나는 늘 뭔가를 골몰하고 있었는데, 날이 어두워져 창밖이 캄캄해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다. 아마, 내가 공부에 그토록 골몰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 골몰함이 재능이란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ADHD는 주의력이 산만한 대신, 꽂히는 대상에는 하염없는 집중력을 보여준다는 것을 나는 근래에 와서 알았다.


아무튼, 나 혼자 있는 시간은 무엇보다 나는 자유로웠다. 누구에게 냉소적인 조롱의 대상이 될 이유도 없었고, 아이들에게 치일까 봐 몸을 움츠려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뭔가에 부딪혀 물을 쏟거나, 물건을 못쓰게 만드는 일도 없었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시간을 보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 후로, 학교를 졸업하고 꽤 시절이 흐른 후에 대학을 갔다. 물론 자랑할 만큼 좋은 학교는 아니다. 지방에 있는 대학에 합격이 되었지만, 또다시 따돌림의 대상이 되는 것이 신물 나서, 아니 사실은 두렵고 피곤해서 포기를 하고, 서울의 조촐한 2년제 여자대학을 갔다. 그다음엔 편입을 하려고 애를 쓰다가 집안사정이 다시 안 좋아져서 생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내가 되었다.


요즈음은 온갖 생활의 번다함에 치여서 머리가 늘 멍한 상태로 세월을 보낸다. 시절이 하 수선하다 보니, 장사가 안되고, 돈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게 나 혼자만의 일은 아니라서 불평불만을 늘어놓을 수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문득문득 혼자서 버스를 타고 서울을 돌아다니던 그 시절을 마음에 그려본다. 세상 어디에도 주눅 들지 않았던 유일한 시간과 공간이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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