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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유난스러움

주눅에 대하여

by 재요

내가 ADHD판정을 받은 것은 대략 삼 년 정도 된다.


처음 병원을 찾을 때만 하더라도 나는 ADHD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아버지의 우울증 치료를 위해 병원에 들렀다가, 나도 함께 우울증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ADHD 검사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남들과 비슷하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자가테스트의 결과가 나름 의미 있게 나왔달까? 사실, 나는 심리질환이 있는 사람치고는 꽤 이성적이었다. 게다가 명상 관련 책도 한 권 낸 이력이 있어서, 나의 주치의 선생님은 내가 ADHD검사를 받는 것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다. 왜 굳이? 사실은 뭔가 색안경을 끼고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주치의 선생님을 대하는 것이 한동안은 껄끄러웠다.


결과는 가벼운 정도가 아니었다. 내가 오랫동안 앓고 있던 우울증 또한 ADHD에서 비롯되었을지 모른다는 소견을 들었다. 검사 담당자는 나에게 결과지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건넸다. 지능이 상당히 높으세요. 언어범위가 상위에 속하시네요. 심리적으로 일상생활에서 불편함을 많이 겪으셨겠어요. 좌절도 많이 경험하셨을 것 같아요, 고생하셨네요. 그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잘 울지 않는 덤덤한 사람인데,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뭐랄까? 내 오십 년 인생을 한꺼번에 위로받는 느낌이었달까?


나는 남들이 잘 이해할 수 없는 유난스러운 아이였다.


아마도 태풍이 찾아온 계절이었을 거다. 나는 중학생이었는데, 우리 학교가 산 꼭대기에 있었다. 산 위에서 우리 동네에 스멀스멀 누런 흙탕물이 차오르는 것이 보였다. 나는 수업을 듣다 말고, 벌떡 일어나서 그 광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 어떻게 해...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이들이 서서히 동요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나를 주저앉히고, 애들의 주의를 돌리느라 한참 동안 애를 먹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반 아이들이 또다시 나를 두고 수군거렸다. 남들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유난스럽다는 것이 문제였다. 한동안 아이들은 내 앞에서 그때의 내 행동을 흉내 내며 시시덕거리거나 조롱하는 듯한 말을 하고 지나갔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유난스러웠다. 모든 감정표현이 그랬다. 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손길이 내 몸에 닿는 것도 몸이 잔뜩 움츠러들 만큼 불편했다. 그 때문에 병원을 찾기도 했는데, 그냥 사춘기라 예민해서 그런 거라고 그때의 의사선생은 참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엄마는 별 것 아니라는 말에 내 머리를 한대 쥐어밖으며 혀를 끌끌 찾다. 지금 생각해도 그런 돌팔이가 어디에 또 있을까, 싶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나는 남들보다 유난히 민감한 사람이기도 했다.


나는 무조건 내가 잘못했다고만 생각했다.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불편함을 이야기하면 잘잘못을 따져보기도 전에 내 쪽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꺼냈다. 그리고 비굴한 미소를 지으면서 상대의 불편함을 어떻게든 보상하려고 애를 썼다. 한마디로 호구였다.


그런 내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사실, ADHD판정을 받기 훨씬 전이다. 명상을 하게 되면서 상대와 나의 관계에 주의를 기울이는 힘이 생겨났다. 아무리 실수가 잦고, 문제가 많은 나라도 눈에 띄는 행동이 꼭 잘못은 아니라는 생각이 생기면서부터였다. 그럼에도 분명하지 않은 불확실성은 언제나 나를 당당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ADHD검사는 오랫동안 내 눈앞을 가리고 있던 불분명함을 걷어내는 일과 같았다.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유부남이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것은 죄지만, 남들보다 대상에 대한 반응이 큰 것은 죄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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