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눅에 대하여
지금이야 순면 제품이 꽤 비싼 축에 속하지만, 예전에는 가장 구하기 쉽고 다루기 좋은 섬유가 면이었다. 그건 팔순이 다 된 나이에 집안살림과 손주들의 양육을 떠 맡게 된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집에서 나온 빨래를 세탁기가 도맡아 한다해도, 할머니는 색깔있는 속옷을 질색 했다. 사람의 살갗에 가장 먼저 닿는 옷이니, 무조건 청결이 우선이었다. 할머니는 마디마디 구부러진 손으로 집안 식구들의 속옷을 전부 손빨래했다. 그리고는 푹푹 삶아서 유한락스를 푼 물에 담가두었다가 반드시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곳에 말려 입혔다. 그 때문에 지상에 사는 집주인 아줌마와 다툼을 한 적도 몇 번 있었다.
아이들은 머릿니 사건 이후로 나에 대해 늘 수군거렸다. 저희끼리 내 이야기를 지어내며 까르륵 대기도 했다. 언젠가 아이들이 책상에 함부로 버려놓고간 낙서에서 나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모양만으로 참담하기 그지 없었다. 빨래를 할 때 마다, 할머니의 입에서는 갈쿠리 같은 막말이 쏟아져 나왔다. 그럼에도 할머니가 빨아대던 집안 식구들의 새하얀 속옥은 세상에 대한 나의 결백 같은 것이었다.
나는 우리집의 첫 아이였다. 고모네 사촌 오빠가 있긴 했지만, 아버지가 태어난 후로 거의 삼십년만에 생긴 집안의 첫 아이였다. 때문에 나의 성장변화에 대해 가족 모두가 무지했다. 그건 나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첫 생리를 시작하면서 할머니의 삶은 속옷은 달에 한번씩 검붉은 얼룩이 생기고, 지워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기집애가 칠칠맞아 속옷간수를 못한다며 나를 나무라기만 할 뿐, 이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서서히 2차 성징이 시작되었다. 가슴이 봉긋해졌다. 밋밋하고 장작개비 같던 몸뚱이의 허리와 엉덩이에 굴곡이 드러났다. 허벅지도 굵어졌다. 나에게 더 이상은 할머니의 푹푹 삶아 입는 순면 속옷이 큰 쓸모가 되지 못했다. 와이어가 들어가고 몸을 죄는 속옷이 필요한 때가 온 것이다. 스커트 아래에는 속치마가 필요하고, 블라우스 아래로 비치는 브래지어를 가려줄만한 슬립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속옷을 챙겨 입는 것이 여성으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되었다. 개인은 물론이고, 무리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할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의 눈에, 나는 아직 어린아이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