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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니와의 전쟁

주눅에 대하여

by 재요

모든 가족은 암담한 시절의 역사가 있다.


아무리 평온하고 화목한 가정사를 가진 가족이라 해도, 저마다의 암담함은 한두 번씩 꼭 있는 편이다. 그건 우리 집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지금 생각해도 넌덜머리가 날 만큼, 고개를 절래 절래 젓게 되는 시절이 있었다. 내가 서울에 올라온 것은 초등학교 2학년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내내 내리막길이었다. 결국,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을 때는 지하실 방한칸에 다섯 식구가 모두 모여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엄마 아빠는 기울어진 가세를 일으켜보고자 밤낮없이 식당일에 매달렸고, 나이가 많이 든 할머니는 힘에 부치는 살림살이를 하느라, 내게 온갖 짜증을 퍼부어 대던 때였다.


어느 날부터인가,

할머니가 내 머리를 빗어주며 뭔가를 뚝뚝 손톱 끝으로 눌러대는 소리가 들렸다.


머릿니였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할머니에게는 머릿니가 별 것 아니었겠지만, 나에게는 매우 큰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학교에서 내 뒤에 앉았던 남자애가 양갈래로 갈라놓은 내 머리 사이에서 머릿니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리고 학교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 초등학교 6학년이다 보니, 이미 어른 냄새가 솔솔 풍기기 시작하는 사춘기 시기의 아이들이 꽤 여럿 되었다. 게다가 얼마 전까지 시장통에서 구르다 온 나와는 달리, 유난하게 깔끔을 떠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런 아이들에게 나는 이내 혐오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어른이나 애나. 입을 나온 소문은 점점 근거 없이 커지기 마련이다.


그건, 나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단순히 머릿니가 있는 것에서부터 소문은 점점 크게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소문이 불어난 과정을 가만히 살펴보면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 사이에 나는 머릿니가 생긴 것도 모자라, 잘 씻지 않는 아이가 되었고, 나중에는 옆에만 가도 썩은 냄새가 나는 아이가 되었다. 거기에 나의 수치심을 유발하기 좋은 건수들이 하나씩 둘씩 들러붙기 시작했다. 속옷을 갈아입지 않아서 노랗게 되었다느니, 누가 그 걸 화장실에서 보았다느니... 아! 생각만으로도 싫어질 정도다.


나는 그 시절을 꿋꿋이 견뎠으나, 상처는 오래도록 남았다.


그와 같은 시달림은 초등학교 6학년도 모자라 중학교에 가서까지 계속되었다. 하지만, 동네를 상대로 중국집을 하던, 우리 부모는 무엇하나 제대로 나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나를 놀리거나 해코지하는 아이를 나무라지도 못했고, 부모를 찾아가지도 못했다. 되려 그 애들을 불러서 자장면이나 탕수육을 먹여 보내는 것이 엄마 아빠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와 같은 악순환이 계속되는 동안, 나는 점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비굴해지기 시작했다. 너무 비굴해져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모자라보일 정도였다. 그 모자람은 고등학교 선발고사를 볼 때까지 계속되었다. 사람들은 내가 너무 모자란 나머지 일반적인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성적이 꽤 좋게 나와서 사립학교 진학을 얘기할 정도가 되니, 그제야 나에 대한 여러 가지 소문들은 잠잠해졌다.


하지만, 말 그대로 상처는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사람들이 무서워져서 고등학교 3년 내내 사람들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심지어는 대입시험을 보고 나서도 지방에 혼자 내려가는 것이 무서워서 학교 입학을 포기하기까지 했다.


나는 그렇게 20대 후반을 지나올 때까지도 세상에 잔뜩 주눅이 든 채로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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