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눅에 대하여
동네 사람들 말로는 아저씨가 걸핏하면 아줌마를 때려서 집을 나갔다고 했다. 요즈음 정서로는 온 동네가 나서서 손가락질을 했을 상황이지만, 옛날에는 남자 혼자서 애를 키운다는 사실에 다들, 딱하게 여겼던 것 같다. 그건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깐깐한 할머니도 나서서 그 집에 반찬이나 애들 옷가지를 챙겨줬고, 우리 엄마도 애들을 데려다가 씻기거나 돌봐주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 집에 둘째 딸이 나와 동갑이었다. 이름이 은식이었다. 은식이네는 횟집을 해서, 자매들에게 늘 생선 비린내가 났다. 그 때문이었을까. 동네 애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서 그 집 자매들끼리만 놀았다. 외톨이이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가부터 세 자매 틈에 나도 끼어서 함께 놀게 되었다.
은식이네 자매들을 만난 것은 내가 병치레를 하고나서 유치원에 다니지 않게 된 후였다. 대략 여섯살 반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따금 동네의 다른 흥미거리를 찾아다닌 것 빼고는 늘 그들과 함께 어울려 놀았다. 우리는 별다른 장난감이 없어도 참 잘도 놀았다. 옛날 솜이불을 배처럼 접어서 모험놀이를 한 적도 있었고, 우리보다 두 살 어린 막내를 인형 삼아서 소꿉놀이를 하기도 했다. 은식이는 나에 비해 참 영리한 아이였다. 소꿉놀이를 하나 해도 참 실감나게 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깨진 황토 화덕을 잘게 갈아서 밥알을 만들었고, 우리집 화단에 자란 채송화 잎을 따서 바나나도 만들어 주었다. 잔디에 숨울 죽여 파전을 부쳐주기도 했다. 가끔은 겁도 없어서 나에게 세상 보지 못한 기이한 구경을 시켜주기도 했다. 언젠가 우리집에 은식이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어서 자기 집에가자고. 세상 재미난 것을 보여준다고 해서 따라갔는데, 맙소사. 나는 목없이 돌아다니던 오리를 보고 기겁을 했다. 은식이는 그게 퍽 재미 있었는지 깔깔거리며 오리 목에 달린 새끼줄을 끌고 다녔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 사이에 훌쩍 나이가 들어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 되었다.
새해가 지난 무렵이었던 것 같다. 우리 아빠는 은식이 아빠와 말을 놓을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던 것 으로 기억한다. 우리 아빠는 이따금 은식이네 전화를 걸어서 말을 하다 언성이 높아지고, 은식이 아빠를 나쁜놈이라고 욕도 했다. 가끔은 엄마와 아빠가 저녁무렵 은식이네 횟집에 가서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아저씨가 은식이를 초등학교에 보내지 않으려는 심산이었다. 은식이 언니도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공장에 보내려 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은식이와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은식이와 나는 서울에서 이모와 고모가 각각 보내온 책가방을 나눠 같기로 했었다. 입학식이 끝나면 구미역 앞에 중국집으로 자장면을 먹으러 가자고 했었다. 은식이는 아직 탕수육을 먹어 본 적이 없어서, 탕수육 먹을 생각에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은식이는 결국, 초등학교 입학식에 가지 못했다.
은식이가 초등학교에 가지 못하게 된 이후로, 우리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 은식이의 학교문제로 우리집 부모와 은식이 아빠가 크게 싸웠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후로는 괜히 아저씨가 무섭고 머쓱해져서 은식이를 찾아가는 일이 점점 줄어서 나중에는 가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봄비가 내렸다. 비가 오는 날이라 엄마가 나를 학교 앞까지 데리러 왔다. 엄마가 학교까지 나를 데리러 온 것이 좋아서 나는 자장면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엄마도 흔쾌히 그러마 했다. 뭐, 그때야 자장면을 먹어도 옷섭으로 먹는게 절반이요, 입가에 묻히고 먹는게 나머지 아니던가. 자장면을 다 먹고 난 후의 내 꼴은 정말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게 앞에 나와서 물장난을 하는 은식이를 만났다. 내가 '은식이다! '하고 소리를 쳤다. 내 소리에 흠칫 놀란 은식이가 폴짝 뛰어서 가게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문이 다 닫히지는 않았다. 엄마가 닫히려는 문을 붙잡아서 은식이를 불러 세웠다. 엄마는 은식이 가방이 아직 우리집에 있다고 했다. 아빠가 학교에 보내 준다고 하면 언제든 갈 수 있다고 엄마가 말했다. 그러나 은식이는 반쯤 닫힌 문 안에서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은식이는 나에게 아무 인사도 하지 않고, 말도 걸지 않았다. 내가 아예 안중에 없는 듯 보였다. 나는 그것이 너무 섭섭하고 서러웠다.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렀다.
은식이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나이가 많이 들어서였다. 십대도 아니고, 이십대도 아니고, 서른즈음도 아니었다. 마흔이 넘어 다시 병치레를 한참하고 나서 그 친구 생각이 났다. 나에게도 주눅이 넌덜머리나게 싫은 감정이었다면, 은식이도 마찬가지였을 거라는 생각이 그제서야 미쳤다. 그 감정을 떨쳐내는 일은 어른에게도 몹시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때 나이 겨우 여덟살이던 은식이의 마음은 오죽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