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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나오는 집

주눅에 대하여

by 재요

나에게 심야 괴담회에 나올법한 이야기가 있다.


우리 집은 지금까지 삶의 곡절이 많았다. 그만큼 불안정한 시절을 많이 보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제는 살림이 좀 피는가 싶었던, 나의 스무 살 무렵. 우리 집은 또 한 번 휘청하고 말았다. 엄마가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서 건물 하나를 통째로 날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우리는 또 한 번 길거리로 나앉게 되었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길거리 한가운데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해야만 했다. 다행히 이번엔 어린 시절처럼 궁색하지는 않아서 내 방이 하나 있기는 했다. 다만, 그 방이 범상치 않은 게 문제였다.


원래 그 집은 무속인의 신당으로 사용하던 집이었다.


특히나 내 방은 신을 모셔놓고 무속인이 점사를 봐주는 그런 방이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그런 종류의 찝찝함이라던가, 의구심에 대해서는 무디다 못해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앞으로 이야기할 그 사건들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 시절에 유행하던 피로회복제 광고가 있었다.


그 광고를 떠 올리면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은데, 벌써 삼십 년이 다 되어가는 이야기다. CF의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컴컴한 그림자처럼 생긴 인간 모형을 엎어치기, 메치기로 쓰러뜨리는 그런, 광고였다. 이사를 하고 얼마 지나서인가, 나는 한 밤에 자다 깨는 일이 많았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 광고에서 본 것 같은 그림자 인간들이 내 옆에 잔뜩 모여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것은 진짜 사람처럼 내 위를 타고 누르기까지 해서 가위에 눌린 적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다가, 공포의 화룡점정을 찍는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런 걸 폴터가이스트라고 하는 건가?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곤히 자고 있는 한 밤이었다. 갑자기 내 방에 네순도르마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 노래에 깜짝 놀라서 눈을 뜬 나는 오디오의 타이머가 잘못 작동되지 않았나, 생각했다. 그래서 전원 스위치를 끄려고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음악은 계속 흘러나왔다. 파바로티의 음성이 그토록 괴기스러울 일이던 가? 겁에 잔뜩 질려서 버튼을 계속해서 누르던 나는 아예 전기코드를 뽑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코드를 찾았는데, 나는 내가 뭔가를 잘못 본 것이 아닌가 싶었다. 코드는 꽂혀있었지만, 콘센트에 불은 꺼져 있었다.


그 사이에 엄마와 아빠가 달려와서 내게 무슨 일인가를 물었다. 엄마 아빠는 우리 집과 이웃하고 있는 술집에서 무슨 음악을 한 밤에 이리도 크게 틀어놨는가 싶어서 잠을 깼다고 했다. 나는 그 와중에 더욱 어이가 없었다. 지르박이나 트로트라면 모를까, 이웃술집에서 파바로티를 틀어놓을 리가 있겠는가?


나는 그제야 뭔가에 홀렸구나, 싶었다.


그 후로도 우리 가족은 전설의 고향에서나 볼법한 광경들을 자주 목격했다. 싱크대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그릇들이 밤사이 소리도 없이 와르르 쏟아져 있기도 했고, 한 밤에 화장실에 가려고 나갔다가 아주 오래된 군복 차림의 남자와 맞닥뜨리기도 했다. 그 남자는 마치 다리에 날개라도 있는 것처럼 담장을 디디고 올라서 우리 집 안채의 지붕 위로 올라가서 사라졌다.


그런데,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그 말도 안 되는 난리를 겪고도 나는 별로 무섭다거나, 이사를 가야 한다던가 하는 절박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아니, 이사를 꼭 가야겠다는 절박함이 있기는 했지만, 귀신이 나오는 집에 살아서는 아니었다. 나는 내가 행길 옆에 자리한 것도 모자라서, 이웃 술집의 취객들과 화장실을 함께 쓰는 오막살이에 살고 있는 것이 진절머리 나게 싫었다. 아침마다 회사에 가려고 문밖을 나설 때마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까 오금이 저릴 지경이었다. 나는 귀신보다도 아는 사람이 더 무서운 지경이었다. 어떻게든 이 가난과 옹색함에서 벗어나길 바라고 또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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