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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싸움 2편

주눅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by 재요

진흙탕 싸움의 말로는 모두가 추잡하다.


그녀와 나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마흔에 접어든 두 여자가 어린 직원들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헐뜯느라 여념이 없었다. 얄팍한 파티션으로 경계를 가른 가벽 하나를 두고, 나는 적진에 홀로 남은 병사처럼 심기에 거슬리는 건수마다 고래고래 악을 썼다. 의뭉하고 뚱한 그녀는 또 그녀대로 어린 직원들 앞에서 자신이 우위인양, 소리소문 없이 세상물정 모르는 탈선을 일삼았다. 그리고 우리의 난잡한 싸움판 위에는 엄연히 사무처장이라는 상사가 있었으나, 그를 잊은 것은 나나, 그녀나 마찬가지였다.


나와 그녀는 한 때, 한 집에 사는 룸메이트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월 임차료 35만 원을 주고 그녀의 집에 방한칸을 빌려 쓰는 세입자였다. 그리고, 그녀는 알량한 방한칸으로 오만 유세를 다 부리는 집주인이었다. 가진 것에 유세를 부리자면, 방 한 칸이 대수이던가? 콩 한쪽, 밥 한 그릇으로도 우위를 점할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게 사람 아니던가? 그럼에도 내 안에 기묘한 감정의 기류가 감돌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바로 주눅이라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게 진짜 문제는 아니었다. 그 무렵에는 그녀도 나도 다정한 자매처럼 잘 지냈다. 문제는 내가 회사에 돌아간 이후부터였다.


그녀는 회사에 돌아온 나를 여전히 세입자 취급했다.


나는 그녀의 집을 떠난 지 오래였다. 게다가 아무리 회사를 잠시 떠났다가 돌아오긴 했어도, 나는 그녀보다 연차가 높은 선배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나를 자신의 집에서 대하던 태도로 퍽이나 일관성 있게(?) 대했다. 그녀의 일관성 있는 태도는 다른 말로 유연하지 못함이었다. 그리고 유연하지 못한 태도는 화를 자초할 뿐이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칼싸움을 하듯이 그녀의 무례함을 한칼 한칼 막아내던 나는 어느 순간 감정적으로 엇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계속 주눅이 들어있다는 느낌이 기분을 안 좋게 했다.


거기에 보태어 내가 그녀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자격지심까지 한몫을 했다. 어떻게든 그 저조한 느낌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발버둥 치면 칠수록 나는 그녀와 자주 부딪혀야만 했다. 그리고 이윽고 진흙탕에 발을 담그고야 말았다.


결론은 완벽한 그녀의 패배였다. 그러나 승리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나의 예견대로 스스로의 구덩이를 파서 들어가고 말았다. 공과 사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그녀의 품성이 한몫을 했다. 어느 집의 부모 아래서 자녀가 일으키는 사고와 회사에서 구성원이 일으키는 사고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그녀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노무범죄에 준하는 사고를 치고 물러앉아야만 했다. 나는 나대로 회사를 그만두어야만 했다. 그리고 한 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결국, 그간의 내 몰상식한 태도와 품위 없는 행동에 대해서, 나이 어린 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내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내 마음의 상처는 수년이 지나도록 화끈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사람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마음의 상처를 입게 마련이다. 나 또한 사회에서 입는 여러 상처 중 하나의 상처가 생겼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그녀로 인해 생긴 상처만은 쉽게 아물지를 않았다.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나 그 무렵의 일들을 생각하며 발길질을 할 지경이었다.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나, 스스로 개싸움을 벌였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개싸움을 아무렇지 않게 부릴 만큼 내 상처를 돌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의 상처를 돌보기 위해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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