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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웅 Oct 06. 2023

서울을 거닐며

Self_Portrait. 2023년 10월 6일 금요일, 맑음.

두어 달 전, 고향에 내려가 오래된 앨범, 그러니까 사진첩을 훑어본 적이 있다. 대학원 과제로 가족에 관한 단편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데 거기에 넣기 위한 부모님과 가족의 옛 사진을 찾기 위해서였다. 낡은 사진첩에는 내가 모르는 과거의 여러 찰나가 영원으로 기록돼 있었다. 이제는 일흔을 훌쩍 넘긴 부모님의 앳된 20대 모습과 나를 비롯한 형제들의 개구쟁이 유년 시절 등. 사진을 하나하나 훑어보면서 느꼈던 애틋하고 뭉클한 감정을 지금도 기억한다. 


이제는 이런 사진첩이 필요가 없다. 핸드폰이 추억을 저장하는 사진첩의 역할까지 맡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자세를 바로잡고 노트북을 켠 오늘 아침, 문득 핸드폰 사진첩을 들여다봤다. 아마 날도 부쩍 쌀쌀해지고, 이제 2023년도 3개월 남짓 남아 올 한 해를 정리하려는 마음이 커져서 그랬던 것 같다. 고향에서 사진첩을 훑어볼 때와 느낌은 달랐지만 그래도 올 한 해 내가 어떻게 발길을 이어갔는지 확인하고 있으니 나름 대견하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더 많은 곳을 구경하고, 돌아다닐 걸 하는 후회가 생기지만 그래도 나름 여러 곳을 홀로 씩씩하게 돌아다녔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돌아다닌 곳은 단연 서울이었다. 

서울. 내가 이 대도시에 올라온 지도 8년이 지났다. 얼마 전 작은 자취방 계약을 2년 연장했으니 최소 10년은 이 서울에 머물 수 있게 됐다. 나름 서울의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지만, 여전히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 많다. 올해 내가 사진으로 남긴 서울은 경복궁, 덕수궁, 인왕산, 종로, 남산, 하늘공원, 문화비축기지, 한강, 청와대, 경의선숲길, 용산, 서소문 등등.

처음 서울에 올 때는 지하철을 타고 역별로 한 번씩 다 둘러보자는 원대한 계획도 세웠지만 여태껏 그 계획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구나. 내년에는 올해보다 서울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을 것 같으니 한 번 계획을 실행에 옮겨보자.


경복궁 광화문.


경복궁 근정전.


경복궁 경회루


덕수궁 석조전


서울을 거닐며 좋은 점은 단연 과거로의 여행이다. 유구한 세월 동안 한반도의 중심이었던 서울의 거리와 골목을 걸으면 반드시 역사와 만나게 된다. 그래서 홀로 걸어도 외롭거나 따분하지 않다. 마치 내가 역사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질 때도 있다. 여전히 남아있는 과거의 흔적을 확인하며 내 상상력은 한 층 커지고 그 상상력으로 나는 오늘을 사는 힘을 얻는다. 

다양한 사람을 스쳐 지나는 점도 매력이다. 세상에서 사람 구경만큼 재밌는 구경도 없다고 하지 않던가. 구경이라는 말은 표현이 좀 그렇지만 거리에서 스치는 수많은 사람을 통해 나는 긍정적인 자극을 받는다. 그 자극은 나를 돌아보게 하고 다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키워준다. 뭐, 가끔은 스치는 사람으로 인해 피곤할 때도 있지만 그 정도야 참고 넘어갈 수 있지.


서울의 한 공간에서 이렇게 서울을 거닐며 느꼈던 점을 생각하고 있으니 바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듯해야 할 일을 위해 노트북을 켠 것이니 이 글을 마치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자. 해야 할 일은 당연히 또 다른 글을 쓰는 일. 평생 글을 쓰며 살기로 다짐했으니, 핑곗거리만 찾으며 해야 할 일을 미루면 난 오늘 하루 제대로 된 내 삶을 사는 게 아니다. 그러니 이제 해야 할 일을 하자.      


그러니까 이 글은 일하기 싫어 딴청 피우는 시간의 기록인 셈이다.     


어쨌든,

고맙습니다.


서울 남산공원.


서울 하늘공원 시인의 거리.


서울 망원동 한강 서울함공원.


서울 하늘공원에서 바라본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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