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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웅 Oct 14. 2023

Memento mori

Self-Portrait. 2023년 10월 14일 토요일, 비 온 갬.

서울에는 생각보다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았다. 오전에 바닥을 살짝 적시는 정도의 비가 내린 후 점심쯤 개기 시작해 오후에는 햇살이 꽤 강렬했다. 비 온 후라 공기도 청량하고, 물 먹은 잎들은 그새 더욱 붉게 물들어 완연한 가을을 느끼며 산책하기 그만인 하루였다. 또한 주말이라 공원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는 점심을 조금 늦게 먹고 밖에 나와 하늘공원을 산책하고 돌아왔다. 반 팔에 겉옷을 걸쳤더니 살짝 땀이 나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샤워하고 이렇게 이 글을 쓴다.


소중한 주말은 또 이렇게 속절없이 빠르게 지나가는구나. 오늘은 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아 책을 읽고, 영화도 조금 보다가 거의 4시가 다 돼 잠이 들었다. 잠도 많이 자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까지 정신이 멀쩡한 걸 보니 역시 체력이 좋아진 것인지, 아니면 기운이 달라진 것인지 모를 일이다. 어찌 됐든 좋다. 한 2년 전에는 이상할 정도로 피곤했다. 8시간 정도를 자도 피곤해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었다. 마흔에 접어들어 겪는 일일까? 철분 수치도 낮아져 그때부터 철분제를 복용하고 있다. 지금은 철분제를 복용한 덕인지 철분 수치도 좋다.

뭔가 무기력했던 시기를 지나 최근에는 훨씬 부지런해진 내가 너무 좋다. 부지런함은 곧 글쓰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직은 하루에 길어야 1시간 정도 집중하는 데 그치지만 그래도 최근에는 끈질기게 하나를 물고 늘어지고 있다. 지금 계속 시놉시스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아마 이달 안에 시놉시스 초고를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그 시놉시스를 바탕으로 조금씩 구체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가면 된다. 그 과정에서 수시로 참고문헌을 읽고, 매일 구상을 하고, 조금씩 써내려 가고. 내년에는 조금 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테니 내년에 아마 얼추 윤곽이 드러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내년이 어서 빨리 왔으면 좋겠다. 

물론, 오늘을 포함해 매일 이야기를 조금씩 앞으로 밀고 나가야 하겠지만.


40대의 인생을 이제 3년 정도 채워가고 있는데 아직 2, 30대보다 40대가 좋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직은 여전히 서툴러도 여유와 지혜가 더 많이 생겨서 당면한 문제들을 젊은 시절보다 더 현명하게 처리하고 있다. 물론, 실수도 하고 착각도 하고 여전히 도망도 치지만 그래도 지난 2, 30대보다는 훨씬 우아하게 해결한다고나 할까? 아우, 정말 난 젊은 시절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다.      


뭐, 중요하지 않은 시기가 있겠냐만 40대가 정말 중요하다는 걸 살아가면서 깨닫는다. 그래서 하루를 정말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다. 무엇보다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 재화인지 절감하고 있다. 시간 낭비는 2, 30대로 충분하다.    


인생을 잘 살기 위해서는 ‘죽음’, 즉 죽는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라는 말이 있다.

그게 라틴어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지.

정말 맞는 말이다.     


내 삶은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 오늘 내게 주어진 이 하루가, 24시간이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품고, 소중하고 의미 있게 사용해야 한다. 그걸 좀 더 일찍 깨달을 수도 있고, 조금 늦게 깨달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깨달은 때가 아니라 깨달은 이후의 행동이다. 깨닫고도, 인식하고도 행동에 변화가 없다면 그처럼 안타까운 일이 또 있을까?




지금 중동에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간에 유혈 충돌로 너무 많은 민간인이 억울하게 희생당하고 있다. 뉴스 화면을 볼 때마다 무력감에 내 얼굴 표정은 굳어지는데 그럴 때마다 이 메멘토 모리를 생각한다. 지금은 비록 아무런 쓸모가 없더라도 오늘 내게 주어진 이 하루를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의미 있게 보낸다면 그 시간이 모여 언젠가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우리 인류의 역사는 결국엔 진보의 역사이기에, 그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자고. 이 정도면 인생을 사는 의미와 목적이라고 말하기 조금 그럴듯해 보이지 않은가?     


그렇지. 이 정도는 해야지.

그래도 이왕 태어났으면 말이다. 

그러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처럼 하루를 의미 있는 시간들로 채워나가자.

지금부터 하면 된다. 그래도 아직 2023년은 두 달이 넘게 남았으니까.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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