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예스24 '국민서평프로젝트' 6회 공모 우수상
이건 포기할 수 없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의 본질은 고통이라 하더라도 끝내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해서도 안 되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 그 사랑의 고통이 얼마나 잔인하고 처절한지 책을 읽어가는 내내 체험할 수 있었다. 손가락이 잘려 나가거나 머리가 쪼개지는 처절한 고통을 감내해야 하나의 소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걸, 이미 차갑게 식은 생명을 위로할 수 있다는 걸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일깨워준다.
이 소설은 단순히 제주 4.3 사건만을 다루는 소설이 아니다. 4.3 사건과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 전쟁과 5.18 광주 민주화운동까지 현대사를 관통하는 비극 속에 드러났던 야만의 상처를 다룬다. 그 야만이 몸서리칠 정도로 잔인한 이유는 가해자에 대한 어떠한 처벌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남겨진 가족들은 평생 이해할 수 없는 비극을 떠안은 채 고통스러운 생을 이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배웠던 모든 정의의 내용에 반하는 이 현실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읽는다는 행위가 얼마나 고통스러울 수 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특히 소설은 비극을 기억하는 이들 또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걸 알려준다. 그렇기에 그 일이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그 일을 하는 이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 깨닫게 된다.
소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현실 속의 두 사람과 신비한 공간에서 영혼으로 만나는 두 사람. 인선의 영혼은 예전에 가출했을 때 한번 그랬던 것처럼 육신이 있는 병원을 떠나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다. 거기에는 영혼인지 아닌지 불분명한 경하가 있다. 이처럼 생과 사를 모호하게 규정한 신비로운 설정은 무거운 주제를 다룸에도 작품 전반에 시적인 서정성을 느끼도록 한다. 그게 가능한 공간인 눈에 고립된 인선의 집. 짙은 어둠 속에서 다만 손에 들고 있는 촛불만이 의지할 수 있는 빛이라는 설정은 소설의 영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또 소설에는 눈과 새라는 두 개의 중요한 상징이 등장한다. 눈은 순환의 상징이다. 소설에서 끊임없이 내리는 눈은 작가의 말처럼 70여 년 전 희생자들의 얼굴에 차갑게 내려앉았던 눈이 다시 내려오는 것으로, 비극은 끝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걸 상징한다. 인선이 키우는 두 마리의 앵무새는 희생자들의 영혼을 상징한다. 죽었지만 사라지지 않고 인선에게 돌아오는 새. 우린 이 새들이 오면 말을 걸고 반갑게 맞아야 한다.
경하는 잠시 영혼으로 돌아온 인선과 이야기를 나누며 인선의 집안에 관한 비극을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된다. 이건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들어야 한다는 걸 상징한다. 다만 조용히 귀 기울여 그들의 억울한 사연을 듣고, 같이 슬퍼하고 그들을 위로해줄 때 이 비극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고 또 다른 생명을 살릴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이미 떠난 사람들과 작별하지 않아야 한다.
경하는 절망 속에서 가까스로 살기로 했기에 인선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었고, 부탁을 들어주러 간 곳에서 인선의 영혼을 만나 결국 인선의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 숨을 쉴 수 없는 비극과 절망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라는 작가의 준엄한 명령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들어주고 기억하는 행위, 잊지 않고 진실을 알려고 하는 용기가 구원을 위한 가장 중요한 행동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결국, 남겨진 이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건 이런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럽게 떠난 이들과 끝까지 작별하지 않는 것. 그것이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아물게 하고 다시 앞으로 나가게 하는 힘이다. 그 행위를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야 한다. 그게 바로 작가가 말한 지극히 고통스러운 사랑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끝내 포기할 수 없는, 또 포기해서도 안 되는 ‘사랑’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