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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웅 Jul 27. 2022

마흔 하나, 영화 만들기 좋은 나이

3. 예방주사

시나리오 초고를 지난주 금요일에 완성했다. 지난 23일에 워크숍 5주 차 수업을 듣고 이 글을 바로 쓰려고 했지만, 쉽게 써지지 않았다. 서운함이라면 서운함이고 충격이라면 충격일 수 있는 일을 겪어 잠시 방황(?)하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이렇게 다시 쓴다.      


역시 창작과정에 있어 작가의 ‘멘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다시 깨달은 지난주였다. 어찌 보면 경험을 통해 실무적인 내용보다 더 중요하고 값진 가르침을 받았는지 모른다. 이 글의 소제목을 ‘예방주사’로 한 이유가 여기 있다.      


아마 거의 모든 창작자는 세상과 소통하는 자신의 작품이 큰 주목을 받길 원할 것이고, 그럴 수 있다는 확신으로 힘든 과정을 견디며 작품을 완성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 작품이 사람들의 호응을 얻고 작품에 담은 의도가 온전히 전달되는 일은 많지 않다. 어쩌면 소수의 작가에게만 허락된 특혜일 수도 있다. 지난주에 내가 완성한 시나리오 초고도 그랬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워크숍에 함께 참여한 구성원들에게 선택되지 못했다. 심지어 워크숍을 진행하는 감독에게도 내 시나리오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방금 말했듯 이유는 모른다.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다. 이로 인해 받은 상처가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상처의 쓰라림이 더 컸던 이유는 내가 오만한 마음을 품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른 구성원의 시나리오보다 내 시나리오가 훨씬 더 좋고, 의미 있다고 속으로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생애 처음으로 만든 단편영화를 함께 볼 때부터 분위기는 뻘쭘했고, 그 여운은 각자 참여하고 싶은 작품을 선택하는 시간까지 이어져 난 붉어진 얼굴을 들키지 않으려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집에 돌아와 이 워크숍을 끝까지 참여해야 하는 건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다른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고립감과 부끄러움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지지받지 못하는 일을 고군분투하며 이어가는 이들의 고독감을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지난주에는 대충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견디기 쉽지 않지만, 단편 제작 과정에서 한 번은 꼭 거쳐 가야 할 과정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은 지난주의 부끄러움과 낭패감을 모두 극복했다. 남들의 시선과 생각보다 자신과의 약속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며칠 동안 진지하게 내면을 들여다보며 내 진심이 거짓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한 프리 프로덕션 과정에서 일찍 거쳐야 할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는 생각에 다시 용기를 얻었다.      


난 분명, 과거에 멈춰있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꾸준히 나가고 있기에 6주 뒤 당당하게 내 작품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가슴에 장착했다.


지금부터 제대로 된 시작이다. 우선 이번 주 금요일 조별 회의 전까지 시나리오 수정 작업을 하고, 배우 캐스팅과 장소 섭외, 예산 책정 등 혼자 진행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자. 토요일 수업도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참여하자. 다시 외면받고 오해받아도 더는 주눅 들지 않을 거다.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반드시 이들에게 제대로 된 내 작품을 보여줄 것이다.      


대략적인 일정을 잡았다. 9월 2~4일 프로덕션을 목표로 차근차근 진행하자. 

특히 사람을 얻는 데 집중하자. 이번 워크숍에 참여하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을 얻는 것이었다. 그 과정이 쉽지 않음을 걸 잘 알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번을 계기로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고 과거의 인연도 다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자. 그렇게 해서 몇몇과 인연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이들과 함께 이번 작업 너머의 또 다른 작업을 꿈꿀 수 있다면.


잊지 말자. 이 모든 일의 전제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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