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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blue sky Oct 16. 2021

수박밭에서의 미팅

‘강아지는 수박을 먹어도 되나요?’

며칠 전 마트에 몇 가지 사야 할 물건이 있어 다녀온 적이 있었다.

제철과일이 아님에도 진열대에 놓여있는 여러 과일들을 보면서 세상이 좋아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여름철 과일인 수박과 포도는 수의사인 직업 때문에 보호자에게 가장 많이 언급하는 과일들이다.

그중 수박은 남아프리카 원산의 한해살이 덩굴 식물로 여름에 가장 인기가 있다.

수박은 수분 91%, 탄수화물 8%를 함유하고 있으며 그 외 카로틴, 비타민 B1, B2,

시트룰린(Citrulline)이라는 아미노산을 함유하고 있어 이뇨에 효과가 높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시트룰린은 요소와 암모니아를 한데 모아서 배출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우리가 수박을 먹으면 곧 오줌이 마려워지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물을 잘 먹지 않는  강아지에게 수분을 섭취하는 방법 중 하나로 수박을 권유하기도 한다.

당연히 씨앗과 껍질은 제외하고 말이다.




고등학교 2학년쯤 친구 녀석이 갑작스러운 미팅 날짜를 잡았다.

학교 체육대회가 있는 날 이어서 수업도 없고 일찍 마치는 틈을 타서 계획을 한 모양이었다.

특이하게도 상대 여학생들이 우리가 다니는 학교까지 온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미팅 장소였다.

지금은 흔하게 많은 커피숍은커녕 6명이  앉을 빵집조차 없는 촌의 면소재지여서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장소가 수박밭.


친구의 동네 수박밭에 있는 원두막을 빌리기로 했다. 당연히 수박 몇 통을 사는 조건이었다.

원두막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어 이동수단으로 경운기까지 준비하는 치밀함에 우리는 그 친구를 경외의 눈빛으로 보답했다.

미팅 당일, 장소를 안내하자 도시에서만 살았던 아이들은 모든 게 다 신기한 모양이었다.

경운기도 처음이요, 미팅 장소가 수박밭 안 원두막이니.....

수박을 직접 따고, 칼로 썰어서 원두막 안에서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이 흐르자

처음에 어색했던 분위기도 한층 좋아졌다.

눈치 좋은 하늘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시원한 소낙비까지 내려준다.

“소설 ‘소나기’의 한 장면 같은데?”


석양이 질 무렵 원두막을 떠나 시내로 향했다.

여학생들이 수박 대접을 받았으니 맛있는 분식집에서 저녁을 대접하겠다고 한다.

버스에 올라 시내까지 1시간가량의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나만 그런 걸까?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적어도 대여섯 정거장이 남았는데, 자꾸 뇌에서 신호를 보내오는 것이다.

 

‘방광이 가득 차 있음  빨리 비우시오’


옆에 앉은 친구 얼굴을 보니 나와 상황은 동일했다.

모두 작은 한숨과 더불어 두 다리를 살짝 더 오므리는 것이다.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우사인 볼트‘가 총소리에 반응하여 트랙을 박차고 나가듯이,

우리는 뒷문이 열리는 부저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지하상가의 화장실로 뛰었다.

마치 몸 안에 물을 가득 채워 손만 대면  터질 것 같은 풍선을 안고 뛰는 기분이었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엄청 빠르게 화장실로 뛰어간 우리는 모두 긴 한숨과 한참의 시간 동안 소변기 앞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 야~ 나 죽을 뻔했어...”

화장실에서 나온 뒤에야 비로소 우리가 왜 시내에 나왔는지를 알게 됐다.

“ 여자애들도  급하게  뛰어가던데...”

한참을 기다려도 화장실로 간 여학생들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 당시에는 삐삐도,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어서 연락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박으로 시작된 미팅은 결국 수박 때문에 끝이 나고 말았다.   

  

오늘 한집에서 같이 지내는 수컷 시츄와  암컷 푸들이  내원했다.

둘 다 물을 너무 먹지 않아 보호자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충분한 수분 섭취와 배뇨가 중요하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수박을 먹여도 된다고 보호자와

이야기가 끝난 뒤 나는 수컷 시츄에게 귓속말을 한다.

    

“ 미팅할 때  수박은 조금만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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