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었다면 어땠을까?
그날은 아침부터 온 동네가 들뜬 분위기였다.
지금 기억에는 정확히 무엇 때문에 동네잔치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침을 먹고 나서 동네 주민들이 삼삼오오 한집으로 모여 잔치 준비를 하였다.
마당 한편 천막 아래에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솥뚜껑을 거꾸로 건채 부침개를 붙일 준비를 하고,
아저씨들은 돼지 잡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모두들 잔치 준비에 여념이 없지만 우리의 관심사는 잔치 준비나 맛있는 음식이 아닌
오로지 단 하나, 돼지 방광이었다!!
축구공이 귀하던 그 시절
이런 잔치가 있는 날 쓸모없이 버려지는 돼지 방광에 바람을 넣어 실로 잘 동여매면,
발 힘이 없던 어린 우리에게는 몇 날 며칠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귀한 장난감이었다.
그러나 이 하찮은 돼지 방광을 얻으려면 오랜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먼저 돼지 잡는 아저씨에게 부탁을 해야 한다.
다행히 그 당시 그걸 부탁하는 이가 우리밖에 없었으니 당연히 우리 차지지만, 돼지 배를 열어 내부 장기를
꺼낼 때까지 옆에 꼭 붙어 있어야 온전한 방광을 얻을 수 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 얻은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는 방광.
우리는 무슨 보물을 인양한 듯 고사리 손을 모아서 방광을 들고는 자전거펌프가 있는 친구네 집으로 뛰어갔다.
수돗가에서 방광 주위를 대강 정리하고 ( 지금 생각해보면 방광 인대를 제거한 듯하다)
자전거펌프 바람 주입구를 방광 입구에 가져다 데고, 한 아이는 방광과 호스를 잡고, 다른 아이는 펌프질을 하여 바람을 넣고, 나는 돼지 방광 입구에 굵은 실을 둘러놓고 묶을 준비를 한다.
바람을 집어넣자 ‘슉’‘슉’하는 소리와 함께 방광이 조금씩 부풀어 오른다.
“우와!!”
방광의 부피가 커지는 만큼 우리의 환호성도 입가의 미소도 점점 커졌다.
이윽고 어느 정도의 바람이 차서 제법 공 모양이 되자 실로 묶기 시작했다.
옆에서 구경만 하던 한 친구는 마음이 어찌나 급하였는지 실매듭을 끊기 위해 가위를 가지고 오는 그새를 못
참아서 아직도 오줌 냄새가 나는 방광에 입을 데고는 이빨로 실을 끊어버린다.
그리고는 퉤하며 침 한번 뱉고 옷으로 입가를 훔치고는 웃음을 짓는다.
바닥에 놓고 돼지 방광을 움직여보니 완전한 구형이 아니어서인지 뒤뚱 걸음 하는 오리 엉덩이같이 왔다 갔다
움직인다.
이제 남은 것은 공터에서 신나게 돼지 방광을 차고 노는 것.
들뜬 가슴을 안고 한달음에 도착한 공터에서 편을 가르고 난 뒤 공을 차려고 하는 순간, 때마침 지나던 동네
형들이 “우와 제법 공 같은데?? 한 번만 차 보자”라며 다가오는 것이었다.
불길한 예감.
“형아 안 터지게 살살 차래이”
돼지 방광 차는데 무슨 똥 폼을 그리 잡는지 누가 보면 월드컵 결승전 승부차기하는 것처럼 오만 폼을 잡고는
뛰어와서 차 버리는 것이다.
순간 둥글게 날아가야 할 방광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동네 아주머니가 붙이던 둥근 부침개 모양처럼 넓적하게 땅바닥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 순간 우리는 모두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2시간 넘게 똥냄새나는 돼지 옆에 기다렸다가 구하고, 또 1시간 가까이 공들여 바람을 넣어
만든 그 귀한 돼지 방광 축구공에 발 한번 데지 못한 채 터져버렸으니....
그 형은 어른에게 혼날까 봐 벌써 줄행랑을 쳐버렸고,
우리는 찢어진 방광을 손에 들고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4살밖에 안된 몰티즈 방광결석 제거 수술을 하였다.
아기 손보다도 작은 방광에 100개가 넘는 다양한 크기의 결석들이 들어있었다.
이 많은 결석들이 방광 안에서 신호를 주니 피가 섞인 오줌을 찔끔찔끔 볼 수밖에...
밥그릇 안의 조각 밥알을 젓가락으로 들어서 내듯이 방광 안의 작은 결석 하나 남기지 않고 꺼낸 뒤 방광을
봉합하였다.
방광결석 제거 수술 후 봉합까지 마친 둥근 방광을 보니, 문뜩 그때 땅바닥에 앉아 터져 버린 돼지 방광을 잡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던 어릴 적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 수술하는 것처럼 그때 찢어진 방광 축구공을 봉합하였다면,
그렇게 울지 않고 다시 바람을 넣어 신나게 공차기 놀이를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