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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다이노

6. 다이노

#118. 환

by 조이진

환한 세상

두 번째 동굴은 히스파니올라섬 가운데 있는 가우다Cauta 산에 있다. 다이노들은 탄생의 산이라고 부른다. 이 산에는 두 개의 동굴이 있다. 왕족 계급 니다이노는 ‘야구아 동굴’이라는 뜻의 가시바야구아Cacibajagua에서 지배계급인 다이노 민족의 어머니가 처음 나왔다고 믿었다. 또 다른 동굴 아마야우나Amayaúna에서는 니다이노를 제외한 하층민이 나왔다. 지배계급과 하층민은 처음부터 다른 동굴에서 나왔다. 민족 기원 신화에서 다이노의 지배계층은 선민사상을 갖고 있었다. 다이노들은 가시바야구아 동굴에서 세상의 모든 것이 기원했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곳이 세계의 중심이고, 하늘과 땅이 운우의 정을 맺어 인간을 잉태한 곳이라 믿었다. 신성한 곳이기에 최고 가시관인 가온아보가 이곳을 직접 통치하고 신성한 산에 올라 지바우에서 제를 올렸다.

어두운 동굴에는 신의 정령들이 많았다. 해가 빛을 들여보냈을 때 정령들은 나무가 되고, 돌이 되어 동굴 바깥으로 나왔다. 새가 되어 동굴 바깥으로 나와 해를 향해 날았다. 새가 어둠과 빛을 연결했다. 무와 유의 세계를 연결했다. 지하 세계와 하늘 세계를 연결했다. 명계와 천계, 이승과 저승의 사이에 새가 있었다. 새 토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래서 다이노들은 마을의 입구에 나무나 돌을 깎아 만든 새를 만들어 높이 세웠고, 례도areitos를 하는 신성한 곳을 금줄 대신 세운 돌 판에도 새를 새겼다. 새의 심장 자리에는 태극 문양도 그려 놓았다. 다이노는 새를 또 하나의 토템으로 숭배했다. 다이노들은 어린 새를 길들여 늘 어깨에 올려놓고 함께 다녔다. 그 새들이 세비야에서 유럽인들의 조롱과 야유에 많이 놀라 까오까오 퍼덕였다.

Petroglyph_at_Caguana.jpg 하늘과 지하 세계를 새가 연결했다. 새의 가슴에 태극 문양이 선명하다.

아직 나오지 않은 중요한 아바타가 있었다. 해가 볕을 비추자 재규어가 여자가 되어 동굴 밖으로 나왔다. 그 여자가 하늘에서 내려온 태양신과 혼인하여 다이노의 첫 아버지를 낳았다. 태양은 환하다. 밝음이다. 남성성을 가진 환한 신이 어둠의 세상을 환하게 바꾸었다. 푸에르토리코 대학에서 다이노 문화를 연구하는 세바스티안 라마쉐Sebastían Lamarche는 환한 신이 바꾼 인간 세상을 “Par Excellence”라고 표현하였다. “가장 이상적인 세상”으로 만들고자 환한 신이 빛으로 내려왔고, 그 빛을 받아 동굴에서 나온 여자와 다이노를 낳았다는 것이다.


세 번째 동굴은 히스파니올라섬 서쪽에 있다. 다이노들은 섬의 등에 있는 동굴이라 했다. 섬의 동쪽 동굴 이구아나보이나가 해 뜨는 동쪽을 바라보고 있으니 해 지는 서쪽을 바라보는 이 동굴은 등에 있는 셈이다. 밤이 되면 해는 이 동굴로 들어가서 다음 날 아침 동쪽의 이구아나보이나 동굴에서 다시 떠오른다고 믿었다. 다이노들은 이 동굴을 통해 밤 또는 죽음 다음의 세계로 들어갔다. 다이노에게 우주는 수직축으로 연결된 세 개의 공간이었다. 하늘과 땅 그리고 땅 아래 고해바Coaybay라고 하는 죽은 자들의 공간이다. 물이 많은 지하 세계다. 다이노는 산 사람의 얼을 괴자라고 했듯이 죽은 자의 혼백을 오피아Opía 또는 옵바op'a라고 했다. 오피아들의 성은 남자였고 고해바를 다스리는 왕의 신하들이었다. 죽은 사람의 얼굴에서 오피아가 빠져나가면 땅과 지하 세계를 연결하는 이 동굴로 내려갔다. 큰 물을 건넌 죽은 자들의 넋은 고해바라는 명계에 들어갔다. 고해바에서 명계를 관장하는 왕을 만나게 된다. 오피아는 죽은 자를 심판하는 왕에게 이승의 삶을 고해야 했다. 마케타우리 왕은 명계에 온 자를 천당 세계에 받아줄지 지옥으로 보낼지 결정했다. 천당 세계에 들어간 혼백은 조상들과 다시 만나 함께 살 수 있고 다시 가족으로 태어날 수 있었다. 마케타우리가 저승 세계로 받아주지 않은 영혼은 이승과 저승의 사이에서 영원히 떠돌아야 했다. 오피아는 낮에는 ‘고해바’라는 깊은 어둠과 적막한 동굴에 머물렀다. 밤이 되면 배고픈 오피아들은 어둠에서 나와 구아바를 배불리 따먹고 나서 동이 틀 때까지 춤추고 노래하며 례도를 했다. 어떤 오피아들은 마을로 내려가 죽기 전에 살았던 마을에 내려갔다. 

마케타우리 재미. 죽은 자를 심판해 천당으로 보낼지 지옥으로 보낼지를 결정했다.

가서 함께 살았던 사람들을 찾아가 보고 기억을 되살렸다. 함께 살았던 사람의 아마까에 들어 함께 자고 함께 살고 싶은 마음에 그 사람의 혼을 잡아가기도 했다. 구천을 떠도는 오피아는 얼굴이 없거나 병들어 죽은 창백한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  밤길을 다니는 나그네를 유혹하기도 하고 어린아이를 잡아갔다. 사람의 모습을 했지만, 배꼽이 없어서 산 사람과 구별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다이노들은 산 사람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서로 배꼽을 만져 확인했다. 미친 사람은 오피아가 몸을 차지해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오피아들은 머리카락 길게 늘어트린 좀비가 되어 사람의 목을 물고 피를 빨았다. 죽은 자의 명복을 비는 다이노들은 마케타우리Maquetaurie를 중요한 재미로 모셨다. 그 왕의 재미는 튀어나올 듯 큰 눈을 하고, 호통치듯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미국 인류학자들은 그런 마케타우리 재미의 이미지를 박쥐를 표현한 것이라고 보았다. 어둠의 동굴에 존재하는 죽음의 신이자, 두 눈이 강조된 캐릭터에 대한 서양인의 눈으로는 박쥐가 연상되었을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어둠의 동굴에 있는 박쥐가 종말이 왔을 때 심판자가 된다고 묘사했다.

Areyto_ceremony_of_the_Taíno.jpg 례도. 며칠씩 멈추지 않고 춤과 음악을 춘다.

세 개의 동굴이 동과 서 그리고 섬의 한가운데에 있다. 섬의 중앙에 있는 가시바야구아 동굴에서 재규어가 여자가 되어 나왔고, 다이노들을 잉태했다. 천문학자들에 따르면 이 동굴에서 밤하늘을 올려보면 북두칠성이 바로 머리 위에 있다. 별들은 북극성과 북두칠성을 중심으로 회전한다. 가시바야구아 동굴을 중심으로 동, 서의 동굴도 회전한다. 그러므로 북두칠성과 가시바야구아 동굴을 연결하는 축은 우주의 축이고, 가시바야구아는 세상의 중심이자 다이노 문명의 시원지였다. 다이노들도 북두칠성에 자화 된 맑은 물을 떠 놓고 장수와 출산을 기원했다. 여기까지가 두 번째 윤회 이야기다.

아레이토를 치르는 다이노들
ConcilioTaino.DiaDelTaino2010.Areyto.SDC12670.jpg 아레이토를 치르는 현대 푸에르토리코인들

+ 다이노 말 야구아jagua에서 재규어jaguar라는 단어가 나왔다. 재규어는 미국 남서부에서 멕시코를 거쳐 중앙아메리카와 아마존 일대에 사는 표범류다. 아메리카에는 이보다 더 크고 강한 포식동물은 없다. 동북아시아의 아무르 표범은 빙하기가 끝날 무렵 베링해가 뭍이었을 때 베링 다리를 건너 아메리카로 건너갔다. 재규어는 아무르 표범의 후손이다. 호랑이 가죽은 줄무늬, 표범 가죽은 점무늬다. 한민족이 호랑이 토템을 믿었듯이 다이노들은 재규어를 토템 숭배했다. 재규어는 아스텍과 마야 문명에서도 가장 중요한 토템이었다. 동북아시아에서는 곰이 사람이 되어 동굴에서 나왔고 호랑이는 사람으로 나오지 못했다. 사람이 되어 나온 곰은 민족의 어머니가 되었다. 그런 것처럼 다이노 민족 신화에서는 재규어를 토템 숭배하는 씨족이 어머니가 되었다.

20231124_145535.png 례도에서 사용한 다이노 전통악기. 위에서부터 푸투토라는 소라, 손으로 흔드는 마라카스, 긁어서 소리 내는 귀로, 나무 속을 파내고 두들겨 소리 내는 마요하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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