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리브레

13. 리브레

#277 작은 전쟁

by 조이진

작은 전쟁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10년 간의 전쟁이 끝났다. 패배는 해방군을 강화를 원하는 쪽과 완전한 해방을 거둘 때까지 투쟁해야 한다는 쪽으로 분열하게 했다. 노예도 처지에 따라 나뉘었다. 독립 전쟁에 참여한 노예들은 자유인이 되었지만,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노예들은 여전히 노예였다. 자유를 얻지 못한 노예들이 금세 반란을 일으킬 것처럼 솥처럼 끓었다. 이런 평화가 오래 지속될 수는 없었다. 10년 전쟁이 끝난 지 18개월 만에 두 번째 독립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산티아고 데 쿠바가 있는 동부에서 비롯했다. 10년 전쟁처럼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맥의 씨마루아보들이 사는 산마루 거주지와 시골 농민 마을에 기반을 둔 맘비들이 게릴라 전술을 펼쳤다. 한가지 차이가 있었다. 이번 전쟁은 처음부터 백인은 빠진 채 흑인들이 주도했다. 10년 전쟁에 참여해서 지금은 자유인이 된 옛 노예들을 본 노예들도 전투에 참여해 자유를 얻고자 했다. “자유 없이는 설탕도 없다No freedom, no cane”는 구호를 외치며 사탕수수밭을 불 질렀다. 기록에 따르면 5,000여 명의 노예가 이때 플랜테이션을 벗어나 산 속 씨마루아보들에게 숨어들었다. 10년 전쟁을 주도했던 백인들은 자유당Liberal Party에 가입해 합법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은 위험하고 실현성도 없다는 이유로 두 번째 전쟁을 비난했다. 이 전쟁도 실패했지만 백인이 참여하지 않더라도 흑인들만으로 전쟁을 치를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흑인 지도자들은 자신감을 얻었다. 이 전쟁에서 호세 마세오와 기예르모 몬카다가 젊고 새로운 독립 영웅으로 떠올랐다. 스페인은 흑인들이 벌이는 전쟁이라며 인종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선전했다. 체포된 자들 가운데서 백인들은 풀어주었고 명단에도 남기지 않았다. 포로 명단으로만 보면 이 전쟁은 분명히 흑인들의 전쟁이었다. 체포된 백인 장교에게는 인종 전쟁에 환멸을 느껴 항복한 것이라고 공개 발언하는 조건으로 석방해 주었다. 이런 선전전은 독립 전쟁에서 백인들의 색채를 탈색하고 혁명에 동조하려는 백인들을 주저하게 하는 데 주효했다. 백인들은 해방된 니그로와 물라토에게 지배당하는 신세가 되지는 않을지 고민하고 두려워했다. 시간이 갈수록 독립혁명에 참여한 세력에는 실제로 검은색이 짙어졌다. 독립과 노예 해방이라는 성스러운 대의가 인종 갈등으로 인해 변질하고 있었다. 그것은 쿠바 해방 전쟁에서 가장 큰 적이자 넘기 힘든 성벽이었다. 반란군에 투신하려는 백인들은 주저했고, 이미 가담한 백인들은 항복했다. 해방군은 무너지고 있었다. 젊은 흑인 지도자들은 스페인과 협상해야 했다. 두 번째 전쟁도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끝났다. 노예제도 폐지하지 못했다.

José_Guillermo_Moncada_Veranes.jpg 노예출신의 독립군 지도자 기예르모 몬카다. 해방된 뒤에도 가난과 조롱을 받으며 비참하게 생을 마쳤다. 그들도 우리 독립지사들의 처지와 비슷했다.

  그래도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 스페인은 노예들을 달래기 위해 채찍질을 금지하고, 자궁 자유법을 쿠바에서도 시행했다. 이 전쟁은 아직 플랜테이션에서 풀려나지 못한 노예들을 해방했다. 평등과 자유라는 단어가 쿠바섬을 덮었다. 스페인은 독립 전쟁에 참전한 흑인들에게 자유를 보상으로 주고 노예제를 폐지하였다. 노예를 소유할 수 있는 플랜테이션 소유주는 계속 노예를 소유할 수 있었다. 스페인이 흑인들에게 자유인이 되기 위해 8년이라는 긴 시간을 자유 수습 기간으로 부과했기 때문이었다. 이 제도는 노예 해방으로 설탕 생산에 타격을 받을 플랜테이션 소유주들의 금전 손실을 완충해주는 정책이었다. 반면에 평생 보수도 받지 못하고 강제 노역에 시달린 노예들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 곧바로 노예를 해방한 소유주들도 꽤 있었다. 19세기에 본격적으로 발달한 기계산업으로 사탕수수밭에서도 힘들고 위험한 일을 기계가 대체했다. 이제 농장주들이 노예를 일 년 내내 소유하지 않아도 되었다. 기계로 대체한 노예주들은 6개월이 채 안되는 농번기에만 노동자를 고용하면 되었으므로 수습 기간 없이 바로 노예를 해방했다. 이제 남은 6개월 동안 많은 흑인은 일과 수입도 없어 ‘죽음의 기간tiempo muerto’을 견디는 법을 수습해야 했다. 쿠바보다 노예에 덜 의존적이었던 푸에르토리코가 먼저 노예제를 폐지했다(1873). 수습 기간 8년이 지난 1886년 인류의 마지막 노예가 해방되었다. 콜럼버스와 스페인, 기독교가 다이노의 카리브를 침공한 지 약 400년 만이었다.

쿠바 독립 투쟁은 흑인을 포함한 모든 피부색의 인종들이 참여하였다. 독립 전쟁으로 마침내 쿠바도 콜럼버스 이래 400년 노예제가 종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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