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엘 미나

3. 엘 미나

#051. 티켓 파워

by 조이진

티켓 파워

그의 유해는 어디에 있는지 미스터리다. 세비야의 성당에는 이 인물의 위대함을 기리는 멋진 조형물이 있다. 관광객은 물론이고 스페인 사람들도 이 멋진 조각물 아래 놓인 작은 관에 그의 유해가 아닌 가짜 유해가 들어있으리라 의심할 사람은 없다. 그 유해의 행적을 돌아보면 이렇다. 그는 1506년 5월 20일 스페인 바야돌리드의 한 수도원에 묻혔다. 콜럼버스는 자신을 아메리카 어딘가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하지만 그때는 아메리카에 그를 묻어줄 만한 교회 건축물이 아직 없었다. 당시 바야돌리드는 레온-카스티야의 수도였고, 카스티야-아라곤 연합 왕국의 수도였다. 이사벨라 여왕과 국왕 페르디난드 2세의 결혼식이 치러졌고, 레콘키스타를 완성하여 스페인을 통일할 때 그리고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오갈 때 이베리아의 수도였다. 그 시절 이베리아의 수도였다면 유럽 최강국의 수도였고 중세와 근세의 세계 역사에서 중요한 결정들이 많이 이루어진 도시였다. 이 도시 이름은 벨라 드 울리드라는 이슬람 이름에서 기원했다. 모슬렘 시절부터 중요한 도시였다. 1513년에 국왕은 콜럼버스가 팔로스항에서 손목을 잡고 걸었던 아들 며느리의 요청으로 세비야 인근 과달키비르강의 섬에 있는 수도원으로 이장했다. 3년 후인 1537년에 며느리는 남편과 콜럼버스의 유해를 도미니카공화국에 있는 산토도밍고 대성당으로 이장했다. 산토도밍고는 그리스도 군사Militia Christi와 도미니크 수도회를 창설해 로마 교황청과 경쟁하는 순수파 신도를 이단으로 몰아 대량 살상하고 유대인 학살의 풍토를 만들어낸 가톨릭 성직자다. 마녀사냥으로 이름난 스페인 종교재판의 주모자다. 이 대성당은 본디 카리브해 원주민들의 신전이었다. 이단 마귀의 신전을 부수고, 그 크고 반듯하게 잘 깎여진 바위들을 재활용해서 기독교성당으로 만들었다. 본디 그 땅에 살던 이들의 신을 이단이라고 처단했던 그 자리를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으로 거룩하게 장식한 성당이다. 유대인을 처단한 도밍고의 정신이 카리브의 원주민들에게는 더욱 잔인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곳이다. 죽은 콜럼버스가 다시 대서양을 건너 산토도밍고 성당에 그의 아들의 뼈와 함께 나란히 묻혔다. 팔로스항에서 어린 손목을 잡고 걸었던 그 아들이다. 원주민들의 신전을 부수어 마련한 반듯한 바위였으므로 관을 놓기에 더없이 좋았다. 그러다가 1795년 스페인의 국운이 쇠하여 산토도밍고를 프랑스에 넘겨주게 되었다. 그의 유해를 넘겨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스페인 왕은 1796년 1월 15일에 콜럼버스의 유해로 추정되는 유해를 쿠바로 옮겼다. 쿠바 아바나 한 중심부에 산크리스토발 대성당Catedral de San Cristobal이 있다. 이 성당 가운데 복음 제단Altar of the Gospel에 그를 눕혔다.

아바나 산크리스토발 대성당

이 성당에는 콜럼버스의 것이라고 추정되는 유해와 유품이 1796년부터 1898년까지 보관되었다. 1898년은 쿠바가 스페인과 벌인 30년 독립 전쟁의 마지막 전투에서 이기고 “해방 쿠바”라는 뜻의 “쿠바 리브레Cuba Libre”를 선언한 해다. 그리고 그 해는 스페인-미국 전쟁이 발발한 해이기도 하다. 스페인은 이 전쟁에서 패해서 제국의 마지막 식민지 쿠바를 잃었다. 1899년 스페인은 쿠바에 있던 그 뼈를 세비야로 옮겼다. 아들 디에고와 나란히 무덤을 만들었다. 디에고도 역시 신세계를 건설한 아주 소중한 스페인 식민주의의 영웅이다. 그러므로 늘 콜럼버스와 함께 모셨다. 그 무덤을 장식한 멋진 조형물은 1902년에 세워졌다.

세비야 대성당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콜럼버스의 관

1877년 산토도밍고에서 이상한 일이 있었다. 그때는 콜럼버스의 유해가 아바나 대성당에 옮겨간 뒤다. 콜럼버스의 유해가 있었다는 산토도밍고 성당 바닥을 파던 일꾼이 오래된 납 상자를 파냈다. 그 안에는 13개의 큰 뼈와 28개의 작은 뼈가 들어있었고, 겉에는 ‘찬란하고 걸출한 남자 돈 크리스토발 콜론 Illustrious and distinguished male, don Cristobal Colon’이라고 적혀있었다. 스페인 왕실은 콜럼버스에게 존경을 표할 때 늘 이 수식을 썼었다. 그때부터 콜럼버스의 유해에 진위 논쟁이 붙었다. 도미니카공화국은 이것이 진짜고, 1796년에 스페인은 엉뚱한 뼈를 가져간 것이니, 콜럼버스는 아직 도미니카에 있다고 주장했다. 도미니카공화국은 1992년 수백만 달러를 들여 거대한 기념물을 건조하고 이 유해를 안치했다. 진실은 무엇인가? 2003년에 과학자들이 세비야 성당에 있다는 유해에 대해 DNA를 검사했다. 그라나다 대학의 교수가 주관하고 콜럼버스의 후손들이 입회하고 각국의 많은 전문가와 미국 FBI까지 관여한 세기의 조사였다. 세비야의 유해와 스페인 남부에 묻혀있는 콜럼버스 형제의 유해를 DNA 비교했다. 위원회는 세비야의 유해가 그의 형제의 미토콘드리아 DNA가 완벽히 일치한다고 밝혔다. 도미니카는 세비야의 유해가 콜럼버스의 것임을 인정은 하지만, 그렇다고 도미니카가 가진 유해가 콜럼버스의 것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도미니카도 콜럼버스 몸의 한 부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위원회는 도미니카공화국이 가진 유해도 조사하자고 했다. 도미니카공화국은 거절했다. “우리 기독교인은 죽은 자의 몸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믿음이 있다.” 거절의 이유다. 콜럼버스에 대한 미스터리는 그의 주검 말고도 또 있다. 그의 출생지가 어딘가도 논란이다. 이탈리아 제노바가 아니라 바르셀로나 근처 카탈루냐 출생이라는 주장도 있고 포르투갈 출신이라는 주장도 있다. 살아 황금을 좇은 자, 죽어서도 입장료 수입을 벌어주기를 기대하는 자들이 벌이는 논쟁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 엘 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