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8. 흰옷
흰옷
“사람들은 아주 예의 바르고 친절했으며, 우리가 지닌 것을 무척 갖고 싶어 했다. 우리는 줄 것이 마땅치 않은데도 그들은 무엇이든지 우리 것과 바꿔가려고만 했다. 깨진 접시도 깨진 유리잔이라도 좋아하며 받아 갔다. 꽤 큰 실타래 16 뭉치를 가져와서 일 원짜리 엽전 3개와 바꿔 가는 멍청한 자도 있다. 물건을 바꾼 자들은 얼른 다시 물에 뛰어들어 헤엄쳐 되돌아갔다.” 다이노들은 목화솜으로 짠 무명으로 흰옷을 지어 입었다. 남자든 여자든 은밀한 부위만을 가리고 다녔다. 이 사람들은 많은 양의 목화를 수확해서 무명실로 만들었다. 콜럼버스는 지신이 직접 들어가 본 어느 집에는 12,500파운드가 넘는 양의 무명실 타래가 보관되어 있었다고도 기록했다. 콜럼버스가 다이노에 이렇게 많은 양을 어떻게 농사짓는지 물었다. 그들은 일일이 손으로 키우지는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저 밭에 씨앗을 뿌려놓으면 목화가 자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익어 스스로 목화가 꽃망울을 터트린다고 말했다. 콜럼버스는 장미가 절로 자라 꽃이 되듯 저들은 목화를 그렇게 키운다고 생각했다. 목화는 익으면 스스로 까맣고 딱딱하게 마른 꼬투리를 찢어 하얀 솜을 터트려 뭉실뭉실 그 꽃을 바깥으로 밀어낸다. 목화솜에서 씨를 빼고 솜을 타서 무명실로 짜내서 다시 무명천으로 짜려면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하고 많은 기구가 필요하다. 상당한 직조 기술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솜을 타고 실을 뽑아내는 일을 쿠바 다이노들도 여자들이 맡아서 했다. 그 많은 무명실을 쌓아놓을 정도였다면 다이노 여인네들, 참 고단했을 것이다.
솜꽃은 중앙아메리카에서도 활짝 피었다. 과학자들이 탄소연대측정법으로 조사해 보니 다이노들은 4,000년 전부터 목화 농사를 지었고, 실을 짜서 흰색 옷을 짜서 입었다. 쿠바는 덥고 습한 지역. 옷은 최소한으로 몸을 가리면 되었다. 목화는 낮고 편평한 바닷가 가까운 땅에서 재배했다. 숲이 많고 높은 산일수록 목화 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 목화솜에서 뽑아낸 실을 구하기 어려웠다. 흰 옷감을 만들 수 있는 면실은 다이노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생필품이요 귀중품이었다. 카리브 지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교환 품목이었다. 면실은 쓰임이 많았다. 면으로 실을 짜고 엮어 그물을 만들 수 있었다. 면실로 엮은 그물로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물고기는 동물단백질 공급원이다. 콜럼버스는 쿠바섬에서 개 말고는 네발 달린 동물을 본 적이 없다고 적었다. 육류 단백질을 섭취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개가 유일한 육류 공급원이었을 것이다. 다이노들은 부족한 단백질을 물고기로 섭취할 수 있었다. 어류 단백질인 물고기가 있으면 바다에서 내륙으로 더 들어갈 수 있었다. 내륙에서 농업 경작지가 확장되었고 농업 생산량이 늘어났다. 목화꽃이 피어 메소아메리카에서 인구가 늘어날 수 있었다. 목화의 학명은 ‘고시피움Gossypium’. 목화꽃이 피었을 때 생명이 피어났고 잉카와 아스텍, 마야 같은 문명도 피어났다. 그래서 면 실은 카리브와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에서 가장 소중한 자원이었다. 다이노들은 콜럼버스에게 가장 소중한 재화인 무명 실타래를 내주었다. 그리고 저승사자의 깨진 유리와 바꿔갔다. 그리고 무척 기뻐했다. 다이노들은 소중한 물건을 가져다주어 환심을 사는 데 성공하여 저승사자로부터 이승에서 오래 살 수 있는 징표라도 구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콜럼버스에게는 하찮은 깨진 유리 조각이었지만, 다이노들에는 생과 사를 가르는 진귀한 것을 얻어 간 셈이었다.
콜럼버스 시대에 면 옷은 극소수의 상류층만 입을 수 있는 최고급 옷감이었다. 모슬렘이 지배한 13세기가 되어서야 목화는 이베리아에 처음 들어갔다. 18세기가 되어서야 유럽 사람들은 면 옷을 대중적으로 입게 되었다. 그때까지 그들은 양모로 만든 옷을 입었다. 콜럼버스도 쿠바에 왔을 때 거칠고 질긴 양모로 만든 무거운 옷을 입고 있었다. 그토록 귀한 면 실꾸리를 허접한 엽전 몇 개와 바꾸다니. 콜럼버스의 눈에 다이노들은 교환 가치도 모르는 ‘멍청한’ 자들이었다. 다이노들이 끝없이 가져오는 많은 면실과 옷감을 보면서 콜럼버스는 가타이 황제 그란 칸에게 가져다 팔면 큰돈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깨진 유리알은 유럽인과 아메리카인 사이에 있었던 두 번째 문화적 틈이었다.
+ 콜럼버스가 기록한 무명실 12,500파운드를 kg으로 환산하면 이 정도면 5,600kg이 넘는 양이다. 엄청난 양인데, 이것이 사실일지 또는 콜럼버스가 자신이 발견한 땅의 가치를 과대포장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 유럽 사람들은 목화를 키워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저절로’ 자라고 수확된다고 적었다. 농사일에 저절로 되는 일이란 없다. 그렇게 많은 양의 목화를 수확하려면 많은 사람이 울력해야 했고 다이노들도 울력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