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분리하는 연습

by 팔로 쓰는 앎Arm

지루한 제목을 달고싶진 않았지만 그렇게 됐다. 매 상황에 각 알맞은 가면을 적절히 꺼내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불필요할 정도로 무경우한 치들을 보면서 그 가면을 꺼내지 않게 됐었다. 뭐 오래되지 않은 얘기다. 기껏해야 반년정도의 일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행복하지 않다. 이래도 저래도 행복하지 않다. 마음은 여전히 아프고 상처도 잘 받고 기대치를 없애버려야겠다는 생각을 자꾸 의식적으로 곱씹게 된다. 슬프고 아프지만 이게 세상이니까 나도 적응해야겠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지만 아직은 그렇지 못하는 걸까. 모르겠다. 글로 잘 풀어낼 용기도 없다. 내가 느끼는 바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은 그 일을 직접 함께 내가 되어 겪어보게 하는 것밖에 없다. 즉, 불가능하다.


감정의 도피처를 만들었다. 과거엔 내 유니콘을 마음속으로 불렀고, 다음엔 누군가, 그리고 요샌 "집에 가고 싶다"다.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고, 집에 가는 길 만원 지하철의 끔찍한 숨결 속에서도 이 말을 곱씹는다. 그렇게 마법처럼 집에 와 이불 속으로 숨어들어갈 때가 가장 좋다. 그 공간에서 나오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건 그 대비되는 공간이 존재하기에 얻는 안정일 테다. 그래서 슬프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이 빠른 템포 속에서 거기에 너무 적응해도 뭔 소리를 듣고 또 아닐 경우에도 문제는 되겠지. 그래서 내 가치에 집중해보려 한다. 이제 연기는 그만 하자. 무슨 소리를 갖다붙여도 노답이라 너무나 슬펐지만 어쩌겠나.


솔직히 마음이 많이 아리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외면하지 말고 다시 하기로 했다. 좋아하고 잘하는 것들에 너무 심취될까 두려워 많이 멀리했다. 지금도 적정선은 그어야 하겠지만 하고픈 일, 잘하는 일, 잘할 수 있는 것들에 다시 에너지를 집중하자. 나를 잊지 말자. 발만 동동 구르며 하루하루 아등바등 살다보니 너무나 잊고 있던 것들이 많다. 이 생활은 언제부터였을까. 재작년부터일까. 언젠가는 분명 난 가만히 있으면 뭔가 하지 않으면 미치는 아이었고 지금도 같다. 그렇다는 사실을 고통스러워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자. 그리고 하면 된다. 무서워하지 말자. 무서울 것도 없다. 세상에. 이걸 이제야 알겠다. 귀여운 멍청이 혹은 겸손이였던가.


2년 뒤엔 가고싶은 그곳에 꼭 가고 싶다. 그곳에 바뀔 지도 모른다. 그 땅을 꼭 밟고 느끼고 실망도 해보고 환희에도 젖고 글도 쓰고 사진도 찍고 그리고.. 그런 모습들을 자꾸 상상해야겠다. 그게 언제 되겠어. 상상하지 말자. 금욕주의처럼 현재에 집중하다보면 마법처럼 자연스레 그런 곳에 발길이 닿을 거라 생각해서 생각을 않았던 건데, 그렇게 나를 억누르다보니 그 목적을 잊은 채 그냥 회색이 되고 말았다. 자꾸만 뭉개뭉개 떠오르는 것들에 그대로 나를 내맡기겠다. 그런 찌질한 치들에게는 신경쓰지 않겠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아니. 내 지금의 마음을 기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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