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고민

기자의 주절거림

by 팔로 쓰는 앎Arm

ㅈ모 신문에서 인턴생활을 할 때 많이 혼나며 배우기도 많이 배웠다. 성차별 주제가 나오면 할 말이 많지만 오로지 글만 주제로 삼겠다. 단문으로 써라, 연결사 쓰지 마라, 지칭어 잘 써야 한다. 불필요한 말은 모두 삭제하는 게 바람직했다. 영혼 없는 문구처럼 보이는 것도 다음날 오전에 다시 보면 그게 옳았구나 하게 되는 글이었다. 글은 삭제할수록 맛있어졌다. 응집력도 높아졌다.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그 때만큼 깊었던 적은 없다. 글에 대한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부장과 선배 기자에게 배우는 일은 힘들었지만 글실력은 늘었다. 마침내 가장 잘한다, 네 이름으로 동네에 뭐라도 세워라 등의 칭찬을 그에게서 들었던 기억은 아직도 뇌리에 깊이 남아 있다.


고민이 깊어진 건 그 이후다. 반대 진영에서 손꼽히는 모 매체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가자마자 내 기사는 반향이 컸다. 운이 좋았던 건지 내 글빨이 정말 그 정도였던 건지 모르겠지만 글을 쓰는 족족 독자의 큰 반응이 왔다. 관련 업계에서도 나를 찾았다. 과거 크게 혼나며 갈고닦았던 탓일지도 모른다. 새롭고 단순하고 읽기 쉬워야 한다. 주장을 펼쳐서는 안 된다. 있는 그대로의 현상만을 보여주면 그걸로 다 된 것이다. 그게 내가 배운 토대였고 그를 바탕으로 나는 속칭 훨훨 날았다. 일만으로만 보면 정말 좋았다는 건 그런 의미다. 선배 기자들의 글을 고쳤고 엉망인 제목과 내용을 손봤다. 십수년된 기자들이 그런 글을 썼다는 게 충격이었다. 방송기자라는 꿈 대신 신문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새롭게 든 생각이었다.


매체마다 특성이 있다. 이 매체에서 옳은 방식은 저 매체에선 틀리다. 근래의 진보진영 모 매체들의 다툼과 내분을 보니 터질 게 터졌다 싶다. 여러 매체를 거치면서 제 아집에 사로잡혀 앞을 보지 못하는 몇몇 기자들을 봤다. 그들의 고집은 이만저만 아니면서 남의 일에는 감놔라 배놔라가 쉬운 이들이었다. 한 매체에 오래 서식하면 그리 되겠구나. 우물 안 개구리가 따로 없다. 따위의 생각을 점점 하게 된다. 과거의 나는 다양한 경험을 가지면어디서든 귀하게 쓰이려니 했는데 문제가 있다. 이런 경험을 한 이들이 적다는 것이다. 연차가 오래 되지도 않고 한국 사회에서 아직은 유리한 남성도 아니어서 나는 늘 하나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당장 포털 사이트만 켜봐도 문장 수준이 심각한 기사들이 널려 있다. ㅈ모 신문은 문장의 정석이다. 단단하다. 응고됐다. ㄴ모 매체는 엉망이다. 일기인지 주장인지 알 수 없다. ㅇ모 매체는 주장이 세다. 기자가 무엇이라고 이 이름을 가지겠다고 고군분투했을까. 명분 없는 글을 적고 싶지 않다는 고집이었을까.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으며 결국 자신들 또한 아집덩어리라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낸 모 매체들 덕에 마음이 쓰리다. 내게 묻는다. 나는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겠다고 매일밤 잠을 못 이루는가. 자격없는 이들이 자리에서 버티는 일에 대해 왜 당신이 의문을 던지는가.


나는 무섭기 때문이다. 멍청한 자가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는 말이 있다. 멍청하다는 건 비약이다. 극단적일지 모른다. 무책임한 자가 신념인 체하는 아집을 가지는 게 두렵다. 정화할 수 있는 데스크나 위가 제대로 없는 자들은 더 그렇다. 크게 혼나며 배우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기자가 되려는 자들은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도제식 가르침에 문제가 많다는 불만들도 있지만 나는 그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펜으로 세상의 여론을 움직이는 자들이 아닌가. 중한 자격을 가지는 게 쉬운 일이어서는 안 된다. 괜한 고민에 시름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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