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대회는 어릴 적에나 순수했지

기자협회·방송기자협회를 누릴 권리

by 팔로 쓰는 앎Arm

일부 남기자들은 지난해 기자협회 탈퇴를 감행했다. 공식적이진 않았다. 축구에 열중이던 몇 남기자가 본사 측에 부당함을 청하겠다며 이뤄진 행동이었다. 그들의 논리는 이랬다. '필요할 땐 부르고 필요하지 않을 땐 모른체한다. 귀찮은 일만을 시킨다. 우리가 왜 축구를 해주느냐. 인원수를 왜 채워주느냐' 따위의 것이었다. 실제 이 주장을 본사에 전달했는지는 미지수다. 참고로 그들은 매주 특정요일 오후 저들만의 축구회 혹은 족구회에서 경기 후 고기를 먹고 남을 씹는 일을 즐기곤 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시커먼 아재들 사이에서 별로 즐겁지는 않았던 경험으로 기억한다. 그 외에도 술자리 갈 일투성이였는데 그 자리에서 오갔을 대화를 짐작하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아. 기자협회 가입자만 대회 참가 자격을 가질 수 있다.)


그 모임은 누가 시킨 것이 아니었다. 시작은 A가 친목을 다지자는 목적을 내배친 후였다고 한다. A는 이후로 매주 모임을 주도하고 장소를 예약하고 안 나오는 사람들을 독촉하고 회비를 걷고 후배를 시키고 등등의 일을 했다. 그 후배는 선배들의 옷을 빨래해야 했다며 고충을 내비쳤다. 자주 그랬다. 기자협회는 매년 축구대회를 연다. 매체마다 다르지만 어떤 이들은 목숨을 걸기도 한다. 그 뒤에는 저마다 조직에 이런저런 잡음이 있겠거니 한다. 여기자는 응원에 동원된다. 매주 축구연습을 하는 이에게 불평을 비할 바 아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참석한다.


A와 그 친구들에게 그걸 시켰던 이는 아무도 없다. 물론 '누가 축구 잘한다며', '기협 축구 뛰어야지' 등 상사의 말은 함부로 무시할 수 없음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후 A와 친구들은 축구를 하지 않는 여기자들에 대한 분노, 응원에 참석하지 않았던(필자는 막내라 그런 데 빠질 위인이 못된다) 여기자에 대한 아쉬움 등으로 귀결된다. 그건 별 게 아닌 것이 아니라 꽤 무게있는 일로 비화되곤 했다. 그들이 지질한 것인지 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A는 또, 자신에게 축구의 중점적인 역할(응원도구 구매, 유니폼 디자인 등)을 다 맡겨버린 남기자 선배들에 대한 원망도 컸다. 후배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종종 원망을 그야말로 쏟아냈는데, 선배 앞에선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냥 웃고 좋은 선배라고 말하는 데 그쳤다.


·


이직 후 가장 웃긴 건 '방송을 아는 사람', '방송기자', '방송'에 대한 모 인물들의 자부심을 들을 때다. 자부심은 알겠는데 그걸 다른 매체 기자들을 깔볼 이유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모 매체에 있을 때 '절대로 절대로 나는 신문기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만큼 나는 글에 대한 예민함이 있었다. 이렇게 싸지르는 '똥글' 말고 정색하고 쓰는 글에 한정하겠다. 아무말이나 쏟아내고 시간을 채우기 위한 미사여구를 쓰는 방송어법은 생경했다. 좋고싫고가 아니라, 그들이 신문 혹은 인터넷 매체의 글을 싸잡아 깔본다는 게 당황스러울 때가 몇 번이고 있었다. 가장 싫은 건 편가르기다. 그렇게까지 강제자부심을 만들어내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집단최면이랄까.


물론 홀로 기사를 써내는 타매체 기자에 비해 방송기자는 카메라, 편집 등과의 보다 구체적인 팀플레이가 이어진다. 그거에 대한 리스펙트는 할 수 있겠다. 어젠 방송기자협회 체육대회였다. 갈 때부터 이상했다. 어쩐지 불편한 느낌을 느낀다면 이젠 '절대 해선 안 된다'는 걸 나는 온몸으로 느낀다. '왜'냐는 알 수 없는 물음부터 장소조차 몰랐던 그곳까지 가는 길…. 하나부터 열까지 과거가 그리워지다가 다시 또 '그건 아니고 답은 없네'라는 대답에 도달하는 의식의 흐름…. '살아보면 살아진다' 따위의 것으로 자존감을 갉아먹는 일련의 행동은 이제 할 필요가 없다. 다른 선택지가 어디에 있으려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모닥불 소리 듣는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