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에 현혹되지 말 것
아직 어리다. 아직. 피가 끓는다면 이유가 있는 거다. 그 애탄 외침을 모른체하느라 너무나 힘들었다. 생각보다 세상은 더 자기를 생각해야 하는 곳이었다. 순수하게 난 일이 좋아요 기자가 될래요 따위의 생각이 아니라 난 어느 정도에서 시작해야해. 하다보면 가겠지 어차피 길은 통하니까 따위가 아니라 이건 하나의 직장이야 따위의 생각이 어쩌면 더 현실적이거나 더 전략적일 수 있었다. 어쩌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 걸.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택했다. 아닌 건 아닌 거다. 아니라고 느끼는 건 이유가 있는 거다. 아닌 것을 너무나 오래 끌어왔다.
무엇보다 힘든 순간을 함께 이겨내주던 이들과(소중해서 적고 싶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갚을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갚기 위해선 내가 더 커야만 한다. 되는대로 크는 것 말고 조금 더 생각을 해보기로 한다. 산을 올라갔는데 다른 산이라면 얼마나 황망하겠는가. 다 가질 때쯤 되어서야 아차 이게 아니었구나 하면 안 된다. 결단을 내릴 마지막 순간이라는 생각이 확고했다. 현실과 나이가 그랬다.
아직도 겁이 많아 내게 일어났던 일을 그대로 적는 건 두렵다. 누군가의 폭력적인 말과 음해를 어딘가에 기록하면 그것 또한 살아움직일까봐, 누군가를 더럽힐까봐 그것조차 두렵다. 기록할 가치 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을 뿐, 잊지 않는다. 잊지 않지만, 새기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그런 자들과 얽힐 일이 없도록 어디든 조직을 선택할 때 조금 더 확실하게 정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겉보기에 좋고 너무나 파격적이라면 그것은 분명 독을 품고 있다. 질좋지 않은 독.
일 잘 하고 있던 회사에서 되도 않는 이들이 술자리에서 연이어 행했던 실수로 상처받고 나왔다는 점이, 그래서 내가 회사를 옮겨 말도 안 되는 권한을 가졌다는 점이 매일같이 찝찝했다. 나는 기사를 쓰고 싶다. 사람들은 이게 진짜 일을 하는 거라 하지만, 나는 시니어가 아니다. 현실도피가 아니라, 현실인정이다. 나는 기자가 되고 싶다. 진짜 기자가 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기자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되지 않겠다. 그 와중에도 일은 하고 있는 내가 참 재밌다. 처리할 거 다 하고. 일을 참 좋아하는 구나 싶어 웃기기도 하고. 강제휴식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