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나마 몇 개의 조직을 거쳐보며 배운 건 '그러려니'의 미덕이다. 종종 오히려 어릴 때가 똑똑했던 것처럼 착각하는 건 그땐 '그러려니'보다는 그래도 '그렇군! 그런데 왜일까?'하며 궁리하는 꼬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묻지 않아도 침대에 누워 마음속으로 곱씹어보며 '이게 더 낫지 않을까?'라고 고민해보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가 초짜 꼬꼬마에 사회인으로 자라 배웠다는 게 고작 '그러려니는 참 좋구나'다. 통탄할 노릇이다. 둥글둥글 웃으며 시키면 시키는 대로, 내 의견 없이 적당히 의견 내는 척하며…. 그러면 주변은 깨끗하겠지. 추측이 아니라 과거 겪은 상반된 분위기의 두 조직을 비교하며 느꼈던 단상이다.
그리고 최근…. 미안하지만 당신의 잘못은 술 탓이 아니다. 술자리가 길고 많아 다들 인사불성이 되곤 했던 모 조직에서도 이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분위기다. 쉬쉬하는 분위기나 뭐 여건 등이 합쳐져 당신이란 '꼰대'를 만들었을 거라 추측한다. 환경 탓할 단순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당신보다 더 권력을 가진 이들이 그러는 걸 단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다.
원래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당신의 단면 중 하나에 불과하겠지. 하지만 매번 그러는 당신을 보니 이 믿음도 의심스럽다. 그러면서도 나 역시 부조리를 말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둥글둥글해야지…. 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기 때문일까.
어쩌면 당신도 슬플 거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당신은 외롭겠지. 너무 극단적일지 모르지만…. 외롭고 고통스럽다면 그만두는 게 맞지 않을까? 내가 어려서 생각이 없는 것인가? 나는 당신이 꿈과도 멀다며 그렇게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걸 습관화할 정도로, 자리에 없을 정도로, 싫어하는 일을 왜 붙잡고 있는지 모르겠다. 당신 말 따라서,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그러려니'가 시작된 건 시기을 좀 거슬러 올라간다. 알게 된 계기는 참 시시콜콜하고 길기 때문에 다음으로 미뤄두겠다. 이제서 또 새롭게 안 것은, '그러려니'의 치명적인 단점. '그러려니'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순간, 내 커리어를 지키기 힘들다는 거다. "쟤는 어디서나 무던한 애니까. 남 싫은 소리 못하겠지." 그 순간 다른 의미의 끝이다.
모순적으로 들리겠지만, 분명 알고 있음에도 나는 '그러려니'의 미덕을 지킬 생각이다. 분명 현명한 선택지이기도 하니까…. 유지해도 될까? 이게 정당한 걸까? 치열한 고민은 계속될 거다. 여기 더해 새로운 결심. 나는 때론 거절할 수 있는 용기…. 이제 '노(NO)'를 외칠 필요가 있다는 걸 조금씩 깨닫고 있다. 물론 할 것 다 하고 꾹꾹 참다가 깊은 고민에 빠져서야 부드럽게 외치겠지만-혹은 아니거나-어쨌든 그래도 된다. 그래야 한다는 걸 분명히 배웠다. 이왕이면 과거 모 조직에서 그랬듯 사랑만 받으면 참 좋겠지만…. 나는 그러려고 온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