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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Apr 24. 2018

종이의 향

그 수많은 매체를 지나 결국 종이로 돌아온 건 사필귀정이었을까. 손이 베어 가면서 지면을 확인하고 매일 아침 지면을 기다리는 독자들에게 보낼 일부 우편을 포장하고 독자의 사연을 보고 보내고 다시 받고…. 행사 부스 준비를 해야 하고 그밖의 잡무도 많고…. 취재 이외에도 신경쓸 게 태반이지만 그래도 혼자 충전되는 건 바로 종이! 종이를 만진다는 이유다. 내가 이렇게나 종이를 좋아하는 인간이었구나 하는 걸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아니, 어쩌면 십수년 만에 다시 떠오르는 기억일 지도 모른다. 신문을 만든다는 것. 그 어느 것보다 매력적이며 우리의 독자층 또한 내겐 가슴 벅차 오르는 대상이다.


변한다는 것. 이미 다 커버린 인간에게 변화를 요구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저 우리는 매일 자신을 들여다 보며 내가 누구인지, 어다로 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내면을 확인한다. 그리고 안심한다. 잘 가고 있다면 잘 가고 있어서, 부조리에 맞서면 내가 아직 피가 끓는구나 안심해서, 강자에게 지지 않고서는 아직 살아있네 하고, 때론 굽히고선 성장했구나 하고. 이 모든 것의 근원은 종이다. 이제껏 달려온 그 무엇도 슬프지 않을 만큼, 종이가 내 모든 빈 곳을 구석구석 메운다.


우리 신문의 독자들을 사랑한다. 하나라도 더 좋은 걸 알아내서 말하고 싶고,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 그러면서도, 톡톡 튀는 감각은 유지하고 싶다. 눈물나게 좋았던 그들과의 만남, 엄청난 감동을 받았던 그들의 말. 방송, 인터넷, 특수 분야 지면 등 여러 군데를 거쳤지만 이렇게나 가슴 충만한 적이 있었을까. 어디든 더 독자를 만나고 싶어서, 미칠 것만 같다. 안대를 하고, 마스크를 하고, 목소리가 아예 안 나오고, 눈병이 돌고, 손은 이리저리 베고, 괜히 기력이 없어도, 결국은 종이. 그 구석구석에 적힌 말들의 가치와 누군가가 쌓아올렸던 역사. 그리고 내게 주어진 이 값진 펜. 그 어느 때보다 값진 이 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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