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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Apr 26. 2018

추운 겨울 끝을 지나

A는 오늘도 분주히 일어난다. 전날 해둔 빨래 덕에 방 안엔 섬유유연제 향이 가득하다. 나쁘지 않다. 몸을 일으킨다. 찌뿌둥하다. 어렵다. 이불과 몸이 딱 하나가 된 듯 깊이, 아주 깊이 파고 들어가는 것 같지만. 결국 일으켰다. 음악을 튼다. 기분을 좋게 도와 줄 어떤 음악이든 좋다. 모닝콜 음악은 다시 바꾸기로 한다. 너무 좋아하는 노래라 잠재의식 속에서도 그냥 먹어버리는 모양이다.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한 푼이라도 아끼기로 했기 때문에 물은 없다. 조금만 가면 있을 회사에 가서 마시기로 한다. 딱 이틀만 그런 궁상을 떨어보기로 했다.


씻는다. 거울을 본다. 웃는다. 말을 건다. 다시 웃는다. 수다를 떨어본다. 쏴아아 하는 물줄기에 몸을 내맡긴다. 는 무슨. 그럴 시간 없다. 얼른 씻고 나와 머리를 털어낸다. 긴 머리는 잘 마르지 않는다. 좀처럼 간수하기 힘들어서 싸맨 후 물을 뚝뚝 흘리며 화장대에 앉는다. 귀찮다. 한 때는 코덕이라 자타 공인할 정도로 물건을 사모았는데 이젠 흥미를 잃었다. 최소한만 한다. 그게 제일 예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거울을 보고 여러 번 웃는다. 방긋방긋. 약을 빼먹었다. 회사에 가서 먹어야겠다 한다. 한 달 정도 꾸준히 끼던 렌즈는 요샌 안 낀다. 몸살이 눈병을 부른다는 걸 안 후다. 사실은 요새도 다시 밤에 잠을 잘 못 잔다. 피곤해 죽겠는데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 날이 밝아 놀란다. 알람이 울려 놀란다. 그렇게 회사에 가서, 끊은 지 수달이 지난 커피를 마신다. 아주 오랜만에. 위가 괜찮다. 많이 괜찮아진 모양이다.


근데 순간순간 잃어버린 나와 네가 떠올라서 싫다. 바빠서 정신없을 때가 가장 좋다. 그럴 새 없이 시간이 벌써 이만큼이 흘렀으니까. 나는 벌써 5월을 지나 6월을 달리고 있고, 너는 아직도 나를 못 잊은 것 같다. 이 말을 하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봐 두려웠다. 나의 원망의 대상인, 나를 너무나 내려 앉힌 너를, 어떻게 내 기억 속에서 정리해내야 할 지 모르겠다. 더러운 쓰레기. 그러기엔 그 시절의 내가 불쌍해서. 아니, 무슨 말이 필요 있어. 쓰레기는 쓰레기일 뿐인데. 사람은 늘 외로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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