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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Aug 14. 2018

저마다 잘 살아가고 있는 거겠지만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아침 지하철이 붐비는 이유도 그렇다. 퇴근 지하철이 발 디딜 틈 없는 것도 그렇다. 그렇다. 다들 각자의 템포로 인생을 살아내고 있다. 각자의 리듬, 자기가 만든 우주에서 생각을 하고 일을 처리한다. 서로의 우주가 만날 일 없는 한 사람은 쉽게 동요하지 않는다. 자기 우주 안에서 결정을 내리고 자기 하루를 꾸린다. 한 달을 꾸린다. 일 년을 만든다. 그렇게 한 생이 흐른다.


한 생이 흐르는 건 무슨 의미인가. 누군가는 꾸역꾸역 살아내고 누구는 뚝딱 산다. 누구는 그냥 살고 누구는 미친 듯이 산다. 역동적으로 지낸다. 누구는 웃고 살며 누구는 툴툴댄다. 그 누구들은 각자가 다른 사람일 수도, 같은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람은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고, 상황마다 다른 처세가 나오는데 그 사람을 간파했다고 쉽게 말할 수 없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느낀다. 내가 아는 저 사람은 다른 데선 다른 사람일 수 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자기 우주 안에서 정한 규칙에 너무 따른 나머지 일상의 틈을 쉽게 잊곤 한다. 이를 테면 갑자기 생긴 상처 따위는 긁지 말아야지 하는 걸 다음 날이면 너무나 쉽게 북북 긁는다. 그리고는 아차 한다. 나 여기 다쳤지. 전 우주에선 별 일 아닌 그 행위는 그의 우주에겐 그리 작은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걸 비웃을 수 없다. 작은 우주들이 처리해내 큰 우주가 별 탈 없이 흘러간다.


작은 우주들이 모이고 헤어지는 여름날의 길거리는 후텁지근하다. 남자들의 땀냄새는 코를 찌른다. 지하철엔 변태가 있기 마련이고 하루에 많게는 두 번씩이나 만나고야 만다. 그 때마다 성을 낼 수도 없어 곤욕스럽다. 무사히 퇴근을 한 후엔 새로운 도전에 맞닥뜨린다. 내가 사는 집을 향해 커다란 카메라를 삼각대 위에 설치하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두 덩치의 사내. 앵글은 여전히 주택가 창문에 바짝 붙었다.


주택가 사이를 향한 앵글은 주택가 창 속 생활을 그대로 찍어갈 수 있다. 퇴근 시간이라 아직 창 연 집은 없고, 쉬고 싶다는 마음에 몇 달 만에 그나마 내 우주 기준 얼른 퇴근을 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 멀리서부터 주시하다 계속된 움직임을 포착한다. 카메라 앵글을 주택가 창문들로 조정하고 두런두런 하는 말씨들. 두 덩치는 영원히 자기들 잘못을 모를 거다. 저런 우주들은 다른 우주가 혼내줘도 좋으련만 한다. 누군가 말해줘도 툴툴대고 씩씩댈 뿐 자기 잘못을 모른다. 찍히면 어쩔 수 없다는 식의 태도. 그러려고 한 건 아니지만 찍힐 수 있다는 건 안 태도. 혹은 정말 그럴 의도여서 모른 척 하거나. 사람 하나에 큰 가치를 매기다가도 사람 봐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은 오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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