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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not your ‘감정 쓰레기통’

by 팔로 쓰는 앎Arm

금주 들어 A 선배의 짜증이 잦았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생의 사소한 실수에 역정을 내고, 얼굴을 부들부들 떨었다. 길게 욕을 했다. 가슴을 쿵쿵 치고 숨을 못 쉴 정도를 씩씩거렸다. 본인이 아르바이트생 기준 무리한 요구를 하고는 다른 지점에선 다 해주는 일이라고 우겼다. 그럼에도 나는 그냥 선배를 달랬다. 웃으면서 들었다. 가만히 들어주었다. 선배는 취재를 앞두고 불평을 쏟아냈다. 선배들의 연차가 많기 때문에 리포트든 뭐든 가장 많은 일을 하는 건 막내다. 어딜 가나 거의 그렇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나 역시 그렇다. 그 일은 ‘기자의 일’과 ‘회사의 일’을 포함한다.


A 선배는 회사에서 자주 나를 불러 카페를 데려가곤 한다. 바빠 죽겠는데 마감 중인 내 옆으로 와서 자기 신세 한탄을 길게 길게 늘어놓기도 한다. 따로 시간 내어 밥을 사주는 일도 잦다. 빈도가 늘어갈수록 내겐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이것은 입사 초부터 이어졌는데 이유는 이제야 명확해졌다. 선배는 감정을 내뱉을 공간이 없다. 그래서 혼자 회사 일을 이리저리 상상하고 다른 사람의 반응을 면밀하게 ‘상상’한다. 때론 맞고 때론 틀리다. 그래서 입 밖으로 내는 일을 삼가야 할 것들을, 어디 가서 말할 곳 없는 내게 한다. 그리고 귀여운(?) 협박을 잊지 않는다. “내가 ㅇㅇ이한테 얘기했으니 어디 가서 들리면 나도 가만 안 있어.” 응? 오랜 시간 들어주고 위로하던 나는 벙 찐다. 이상한 사람이다 싶었으나 선배고 피할 길이 없어 들어주었다. 파악할 때까지. 이젠 알겠다. 멀리 해야 할 사람이다.


그러나 팀에 인원이 적고 A 선배는 아무 이유 없이 종종 들러 꽤 당당하게 자기 개인적인 일을 내게 시키곤 한다. “미안하다”거나 “바쁘지” 따위의 인사치레조차 없다. 정말로 당당하다. “해달라니까?” 적반하장에 무대뽀식의 태도. 본인의 흠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상사를 까내리기 바쁘다. “B 선배가 나한테 글쎄 자기 전화를 대신 해달래.” A 선배가 집에서 밍기적대다 회사에 오는 그 시간에 그 일은 벌써 하고도 남았을 거다. 미루는 B 선배의 편을 들고 싶은 건 아닌데, A 선배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말 ‘이 사람 좀 너무한다’ 싶다.


A 선배는 금주 생리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화 불량이라고 했다. 약은 안 먹는단다. 기꺼이 내 약을 주길 몇 번. 그 때마다 고맙다 소리 한 번 없이 먹는데, 그 때마다 하는 소리가 가관이다. “건강 불안증 같은 거 있나봐?” 상비약을 들고 다니는 국민들이 화낼 소리 아닌가. 그냥 귀여운 수준이겠거니 하고 웃어넘기는 것도 십수 번. 자꾸 나를 따로 불러 본인의 화풀이, 일 당당하게 미루기,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대불륜 따위의 행동을 하는 것은 이제 선을 분명히 그어야 할 것 같다.


A 선배가 하도 징징대기에 나는 이 선배 뿐 아니라 팀의 일에 참 많이 동원되는데, 도와주면 그걸 파고들어 참 이상한 망상을 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본인이 B 선배와 아이템 나눈 이야기를 내겐 공유하지 않는다. 물론 두 분이서 알아서 잘 처리하면 상관없는데, 문제는 내게 항상 손을 뻗으니 불거진다.


당연히 나는 A 선배가 그 아이템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마침 A 선배가 내게 도움을 요청하며 툴툴댄다. 취재 하나 나갈 때마다 난리가 대단하다. 아프다니 전화가 어쨌다니…. 일 한 번 하면서 참…. 이런 저런 생각은 접고 웃는 낯으로 대한다. 그냥 그러겠거니 도와준다. 그렇게 소란스러울 만큼 힘든 일도 아니기 때문.


결과를 말해주면 A 선배 반응이 참 가관이다. 고맙다 말 따위 없이(바라지도 않았다) 징징대며 B 선배를 욕하면서, B 선배에게 얘기하란다. 그럼 나는 묻는다. 선배 진행인데 왜 B 선배에게? 그럼 얼굴을 부들부들 떨고 씩씩대며 말한다. “내가 저번에 다 얘기했는데 내 얘기 대충 듣는구나?” 이런 식의 이유 없는 화풀이식 공격이 정말 몇 번째다.


한두 번이면 “이 선배 기억력이 좀 안 좋구나. 넘어가자” 하는데 매번 공격을 한 후 “건성으로 듣는구나?” 따위의 빈정거림을 덧붙이는 건 이젠 못 참는다. 선을 긋지 않으면 이들은 선이 없는 줄 알고 달려들기 때문. 그 말엔 대답을 않고 다른 말을 한다. 그럼 본인이 민망한지 불편한지 따로 또 불러서 헛소리를 한다. 다른 선배에 대한 욕욕욕. 앞뒤 안 맞는 이 말들에 내가 하나 하나 따질 필요도 이유도 못 찾겠다. 말이 통해야 하지. “기억력이 참 안 좋으신가봐요”라고 할 순 없으니 웃으며 답해준다. “선배 이번 주 ㅇㅇ라 정신없으시죠. 에고 힘드시겠어요~ 그 얘긴 정말 못 들었는데 제가 선배 얘기 들어드린 건 힘드신 거 위로한 거죠. 전 원래 선배들 얘기 들을 때 꼬치꼬치 따지지 않아요. 그렇겠구나~ 하죠.” 답한다. 그게 내 최선이다.


선배는 그제 자기가 분노조절장애인 것 같다고 말했다. “맞아요”라고 답할 순 없었다. 워워해드렸다. 진정 좀 하라고. 일할수록 느낀다. 이 업계에 이런 분이 많은 걸까 아님 어디나 그런 걸까? 참 미스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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