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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배와 밥을 먹고 나면 속이 더부룩하다

by 팔로 쓰는 앎Arm

선배 A는 밥을 먹을 때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고깃집에선 으레 강다니엘, 박서준, 송중기 등의 사진이 눈에 띈다. 파스타집에선 방탄소년단, 워너원 등 남자 아이돌의 노래가 흘러 나온다. 어느 회사를 가나 문제는 다 있지만 귀여운 수준이라 생각하니 까놓고 써본다. 어느 회사를 가나 문제는 다 있지만 귀여운 수준이라 생각하니 까놓고 써본다. 저 아이돌들의 노래가 연달아 나오거나 수록곡이 이어져 흐를 때가 있다. 아, 세븐틴도. 그러면 선배 A가 꺼내는 '레퍼토리'가 있다. "나는 이 노래가 좋은 지 모르겠다." 이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해서 괜찮다. 호불호니까. 아무 문제 없는 얘기다. 뭐, 굳이 따지자면 상대적으로는 말이다. 본인의 생각을 후배에게 충분히 얘기할 수 있으니까 정도로 여기고 흘리면 그만인 수준이다.


문제는 이거다. "얘네는 예전에 여혐 가사를 썼는데 지금 왜 이리 인기가 많느냐. 나는 인정 못하겠다. 그걸 알고 좋아하는 것이냐 그걸 알고도 좋아한다면 정말 어이 없는 일이다." 이렇게만 얘기하면 나도 그냥 흘려 듣겠다. 하지만 이어지는 것은 그 업적(?)에 대한 욕설 섞인 까내림이다. 듣는 나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싶어서인지 자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어서인지 본인이 말할수록 본인 혼자 격해진다. 그러면 나는 듣고만 있다가 웨이터 분에게 물을 주문한다든지 "오 이거 맛있네요" 등으로 화제를 돌리려고 한다. 생전 선배 말을 안 끊는 내가 다른 얘기로 넘어가 보려고 나름 노력(?)하는 거다.


여러분도 알겠지만 선배 말을 자르는 건 힘드니까. 그러니 듣고 있으면 선배 A는 본인 얘기에 취해서(이걸 뭐라고 할 만한 에너지는 내게 없다) 욕이 걸어지고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본인이 늘 비난하는 내용인 "한국 남자들은 어디 가서 대단한 줄 알고 너무 시끄럽게 떠든다" 따위의 내용을 똑같이 해낸다. 그런 비난도 안 했으면 좋겠고 말도 크게 안 했으면 좋겠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면, 결론엔 "요즘 남자 연예인들 다 너무 못생겼는데 왜 즙을 짜내 좋아하냐" 등의 말이 나온다. 즙을 짜내는 게 대체 무슨 말인지? 유추 가능한 그 말을 듣고 있으면 답답하다. "어디 감히 ㅇㅇㅇ가 배우인 척을 하냐." 라는 말을 들으면 이제 좀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자꾸 다른 서양권 톱스타를 거론하며 그 배우가 아닌 남자 연예인들을 깎아 내린다.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돈을 버느냐" 등의 이야기다. 사람에겐 다양한 매력이 있는 거고, 연예인들은 그 중 하나가 특출나다고 나는 생각한다. 상위 클래스로 올라 가기 위해서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본인이 가진 매력이 극대화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출난 장점과 노력이 타고난 것보다 대단할 수도 있는데. 그걸 단 한순간에 깎아내리면서 참 찰진 욕을 식당 떠나가라 굵고 목을 긁는 목소리로 말씀하시는데 듣자면 참 "집에 가고 싶다"다.


반복되는 이야기가 웃긴 게 뭐냐 하면, 이런 내용을 신나게 말하다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기상캐스터 분에게 "쟤는 왜 검은스타킹을 신었냐 원피스를 입고" 등의 말을 여러 가지로 말씀하신다. 아, 선배는 같은 옷을 굉장히 좋아하셔서 그걸 꽤나 오래 고수하시는 스타일이다. 같은 스타일이라 아니라 같은 옷이다. 애착이 강하신 모양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따로 없다. 선배가 뭘 입으시든지 1도 관심없지만 나에게도, 텔레비전 속 기상캐스터 등에게도 누가 봐도 관리는 더 열심히 하는 이(혹은 그래 보이는 이)들에게 다른 잣대를 들이대니까 참 곤혹스럽다. 여름에 민소매, 반팔 안 입었던(일주일에 하루, 얇은 소재 블라우스) 내게 뭐 이상한 말을 해대고. 한두 번이면 흘리겠는데 세 번, 네 번, 다섯 번.


또 문제는 이거다. 영화, 드라마, 뮤지컬, 예능 다 싫어하신다. 어쨌든 '콘텐트'를 만드는 기자로서 다양한 걸 아는 데 문화도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나로선 참 피곤하다. 논의의 여지 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사회든 정치든 다 필요한 얘기인데 뭐는 듣기 싫고 어쩌구 저쩌구. 그렇게 다 듣기 싫으면 왜 기자를 하는가? 뉴스를 왜 보는가? 차라리 눈 가리고 귀 막지. 제발 소식은 뉴스로 제대로 익히고 직접 발로 뛰어 익혔으면 한다. 선배 B는 A가 커뮤니티를 엄청 하는 것 같다고, 하는 얘기마다 커뮤니티에 당일 올라온 글이라고 귀띔했다. 커뮤니티 같은 것 좀 누구든 안 했으면 좋겠다. 사회를 좀먹는 존재라는 생각이, 이 분 보면서 더 확실히 든다.


밥 먹을 때마다 모든 것에 대해 안 좋은 얘기만 하는 분이랑은 밥 먹을 때마다 너무 피곤하다. 좋아하는 취향의 부재를 그렇게 싫어하는 것으로 방어하는 것이 어떤 자기방어기제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다른 선배들이 있으면 하지 못할 이야기들을 내게 그렇게 스트레스 풀듯 쏟아내는 것에 정말 피로를 느낀다. 싫어하는 이유도 없다. 왜? 본인 스스로 그것들을 보지 않는다고 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드라마, 예능 등은 잘 보지 않는데, 보는 사람들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냥 관심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그냥 '저 사람은 이렇고 나는 이래' 하고 속으로 생각할, 혹은 생각할 필요도 없을 그런 공격을 왜 자꾸 여기 저기 드러내는 것인지, 제발 다른 데 가선 저러지 않았으면. 선배와 밥을 먹고 나면 그 생각이 든다. 저 선배, 여기서 이렇게 실컷 이상하게 떠들었으니 다른 데선 그러지 말았으면.


그러면서 또 하는 생각은 어디든 이런 선배가 하나씩은 있는데, 귀여운 수준이라는 게 슬프다는 것과 왜 이 직업을 하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꼬인 자기 안의 문제를 마치 대단한 엘리트 의식인 양 착각하고 있냐는 거다. 제발, 창피하니까 어디 가서 입 좀 다물었으면. 그런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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