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를 시작하고 안정을 찾아 가면서 요리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종종 집에서 요리를 하면 "무슨 일이야?" 시선으로 바라보는 가족이 있었기에 부담스럽기도 하고 부끄러워서 하지 않았더랬다. 게다가 주로 밖에서 먹는 일이 잦았기에 요리의 요자도 보지 않던 시절이 있었지. 불과 몇 달 전까지의 일이다. 하지만 이제 직장과 거리도 가까워지고 하다보니 저녁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이 일주일에 한 번쯤은 형성된다. 황금 같은 주말에도 혼자 해먹어야 하는 일이 태반이다. 배달의 민족에 언제까지 의지할 순 없는 바. 나의 잔고가 내게 말하노니, "너는 이제 네가 밥 차려먹을 때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야매요리가가 되었는데, 실상은 이렇다. 떡볶이 중독 수준인지라 홈플러스에서 세일하는 떡볶이를 사다 해먹거나, 종종 이벤트성으로 배달의 민족서 떡볶이를 주문해 먹는다. 이 때 남은 것들이 아주 쏠쏠한 재미를 몇 일 간 주곤 한다. 홈플러스 떡볶이를 먼저 예로 들어보자. 2인분가량의 요리를 한 번에 한다. 초창기 귀차니즘 절정일 때는 하루 한 끼를 해먹어도 성공이었기에 그랬다. 다이어트 중이기도 했고. 1일1식 말이다. 이 때 남은 떡볶이는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나중에 꺼내 치즈가루와 우유를 넣어 졸여 먹는다. 그럼 양이 두 배로 불어난다. 고소한 냄새와 재미는 덤이다. 내가 뭔가 요리를 했어! 하는 뿌듯함을 노력 대비 많이 얻을 수 있다. 투자 가치 있는 야매요리인 셈!
다음은 식빵이다. 빵보다 밥을 좋아하는 식성이 된지 3년. 빵을 먹으면 부글거리고 속이 부대낀다. 그 불편함을 감당할 길이 없어 멀리했지만 다시 한 번 잔고 가라사대 "빵이라도 먹어 한 끼를 무사히 넘기거라." 이 때문에 나는 버터와 계란을 구매했다. 지난 여행에서 잔뜩 사온 카야잼을 듬뿍 얹고, 스크램블드 에그를 얹어 먹으면 한 끼로 뚝딱이다. 하나로는 부족해 두 개를 먹는다. 혹은 하나를 먹고 떡볶이를 먹는다. 이게 한 끼 세트 구성이다. 하루가 든든하고 말고.
또 있다. 붉닭볶음면과 떡볶이의 만남이다. 혹은 라면과 계란의 조합이다. 자취를 시작한 후 계란을 몇 달 만에 사먹었다. 그러니까, 어쩌면 내 돈 주고 산 첫 역사일 지도 모르겠는데(내가 내 요리를 위해 직접 샀다고! 이전의 나는 그냥 안 먹고 만다) 계란을 '살려고' 샀다. survive를 위해서다. 영양가 떨어지는 음식만 이리도 해먹어대니 계란이라도 얹어 양심의 가책을 던다. 그리고 말한다. "괜찮아, 난 밖에서 좋은 거 많이 먹었으니까." 이렇게 소란스럽게 요리를 해먹고 쓸고 닦고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꾹꾹 눌러 정리하고 나면 이런. 다시 배가 고플 지도 모른다. 잔상이 없어지는 건 최고의 선물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