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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Nov 25. 2018

지면 기사와 온라인 기사, 고양이로 알아보자 ①

지면 기사와 온라인 기사의 차이가 뭐냐고 묻는다면 '기본적으로 취해야 할 태도는 다른 게 없다'고 답하고 싶다. 그러나 온라인 매체가 증가하면서 광고 유치 등을 위해 기사를 기계적으로 찍어내는 이른바 '유사언론'이 생겼다. 이들이 만들어낸 현재의 언론계 상황은 '지면 기사와 온라인 기사는 다르다'는 결론을 말하게 한다. 이는 전체 온라인 매체에 대한 말이 아니다. 실제 국내서 상위권을 차지한 지면 매체들도 빠르게 디지털 전환을 하고 있다는 건 이미 수년 전에 논의가 끝난 일. 언론사가 디지털로의 전환을 꾀하지 않는 것은 아주 한참 늦었다는 얘기가 된다. 대개 이 디지털, 즉 뉴미디어로의 전환은 평기자의 필요보다는 국장급 이상의 판단이 좌우한다. 뉴미디어 시장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수년 전부터 나왔고, 실제 선점 매체들도 생겼다. 따라서 이 시점에 '전환'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겠다.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인가. 한 조직의 운영 방향을 바꾼다는 것은 많은 소속원의 반발을 부를 수 있다는 게 함정. 이 때 임원진의 태도가 중요하다. 한 번 정한 방향에 대해 가타부타 않고 계속 해서 미는 것. 그렇게 해서 아래에서 '어어어어' 하면서 끌려가게 하는 것. 즉, 누군가는 키를 잡고 속칭 '악역'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뉴미디어로의 전환이 뭐 그렇게 큰일이냐, 좋은 것 아니냐, 젊은 층에게는 당연한 일인데 언론사에서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라고 물을 수 있겠다. 답은 '아니올시다'이다. 방향키를 잡은 실권자의 노력이 없다면 기자들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개발자 역시 그렇다. 창창하고 뉴미디어의 필요성을 이해한 기자를 조직에 데려오는 데 가까스로 성공한다 해도 그 기자가 새 매체 조직원을 설득할 순 없기 때문에 실권자가 설득한 상태여야 한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렇다. 집에 고양이 몇 마리를 이미 기르고 있다. 그들 사이에는 서열이 정해진 상태. 주인이 보면 웃길 수도 있는 자기들만의 암묵적 규칙도 있다. 뭐. 창문은 내가 먼저 긁는다든가 캣타워 맨 꼭대기는 누구 고정석이라든가. 밥 시간에는 저 구석탱이에는 누구, 이 구석탱이에는 누구가 먹는다. 똥 싸고 모래는 누가 덮는다 등. 별 거 아닐지 모르는 이 규칙들이 고양이들에게는 꽤나 중요하다. 이 때 고양이 하나가 냥아치가 돼 제멋대로 굴면 집사가 개입한다. 집사는 비록 이름은 집사지만 밥을 주는 실권자다. 터전도 제공한다. 이 같은 비유는 노조 등의 문제를 제외로 한다. 지금은 어디까지나 뉴미디어 환경이 제공되기 전의 언론사 조직 서열이 있다는 것을 비유한 거다.


뉴미디어가 등장하니 뉴미디어 부장의 힘이 세진다. 뉴미디어국도 생겼다. 보도국은 반발한다. 내가 이 구역의 냥1위였는데 뉴미디어국을 만들어 다른 냥1위를 만들겠다냥?! 이런 심리다. 또 있다. 보도국이 터줏대감인데 굴러 들어온, 잘 알지도 못하겠는 뉴미디어국을 만들어 우리 취재처를 어지럽히겠다냥?! 등의 이유다. 국장급의 고민이 이렇다면 기자는 어떨까. 똑같다. 내가 왜 온라인 기사를 직접 올려야 하냥?! 취재하는 것도 힘든데 온라인 기사까지 별도로 쓰란 말이냥?! 여기서 기자의 발전과 퇴화 첫 번째 난관이 생겨난다. 영리하고 젊은 기수 기자들은 대개 군말없이 온라인 기사로 자기 취재 내용을 옮겨낸다. 어려서부터 온라인에 익숙했고, 사람들이 내 방송 혹은 신문을 읽고 말하기보다 온라인을 보는 확률이 높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 당장 네이버를 욕하긴 해도 네이버 메인에 턱턱 걸린 기사들을 보면서, 또 그걸 보고 쩔쩔 매는(잘못이 있는 경우) 취재원(비리의 경우)을 보면서, 그로 인해 사회가 한 뼘이라도 바뀔 시늉이라도 하는 걸 보면서, 그 '맛'을 잊지 못하는 거다.


그러나 온라인으로 기사를 옮기고 싶어하지 않는 기자들도 있다. 이들의 논리는 이렇다. 돈 내고 보는 독자들은 봉이냐?! 그 사람들은 바보라서 지면 구독을 하는 거냐?! 온라인에도 기사를 공개해버리면 유료 독자들은 호구냐?! 그러나 대개 지면을 구독해 읽는 독자와 온라인 플랫폼을 사용하는 독자의 연령대, 소속은 다르다. 또, 지면을 읽는 독자와 온라인을 읽는 독자 중, 누구 하나 선택할 수 없으니 온라인도 병행하는 거다. 누구나 '종이의 위기'를 말하지만 어떻게 될지는 사실 아무도 정확하게 모른다. 그저 딱 하나 당연한 건 '어쨌든 온라인은 선택지가 아닌 필수지가 되었다'는 것. 그러나 이같은 기자들은 대개 이런 사고방식을 가졌다. 아, 그 전에 하나 알 것. 환경이 어느 정도 좋은 회사라면 뉴미디어 시대에 맞춰 기사 작성 시스템을 이렇게 저렇게 바꿔낸다. 이렇게 바뀐 시스템은 온라인 기사 편집이 아주 용이한 버전이다. 이로써 몇 개의 기사 작성 시스템을 입 앞에 떠먹여줘도, 앞서 말한 '이같은 기자들'은 거부한다. 이들은 이런 말을 당당하게 하곤 한다. 난 그거 설치도 안 했어. 그게 뭔데? 그걸 우리가 왜 해야 하는데? 미국에서 그러는 거? 그건 미국이고. 뉴미디어 결국 망할 걸? 우리는 이걸 속칭 '땡깡'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여기,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혼자 당당하게 그루밍하며 주위를 둘러 본다. 고양이의 털은 반짝반짝 빛난다. 결 역시 패션냥이라 저가 원하는 방향대로 아름답게 정리됐다. 고양이는 그리고나서 누군가를 기다리듯 창가에 앉는다. 아주 아름다운 자세로. 집사가 송구하지만 사진 한 장만 찍겠나이다 따위의 말을 하면 냥펀치가 기다린다. 냥이는 이해할 수 없다. 원하는 자들이여, 나를 보러 와. 나를 직접 만나는 것만 허락하겠어. 슬퍼진 집사는 그 옆의 냥이 사진을 앨범에 이만큼 담는다. 둘 다 예쁘기 때문에 집사는 사실 냥펀치를 맞은 게 그렇게 짜증나지도 않는다. 쟤는 그러려니 한다. 집사는 별별그램을 개설해 사진 찍는 데 성공한 냥이 사진을 올린다. 귀여운 해시태그도 잊지 않는다. 사진이 올라간 냥이는 '찹쌀냥이'라는 별명도 얻는다. 그루밍도 상대적으로 귀찮아 하고 패션냥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 찹쌀냥이가 어느 날 화보 촬영을 간다. 집에 남은 냥이는 찹쌀냥이를 외면하며 그루밍할 뿐이다. 아, 비유하다 잊을 뻔했다. 기사는 독자가 읽지 않으면 힘이 없다.


① 기사를 쓰는 기자의 태도 ①

② 지면 기사와 온라인 기사, 고양이로 알아보자 ①

③ 취재원을 대하는 기자

④ 기자에게 생기는 직업병

⑤ 기사를 읽기 전에 독자가 알면 좋을 몇 가지

⑥ 일부 언론사의 고질병 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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