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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로 쓰는 앎Arm Dec 04. 2018

지면 기사와 온라인 기사 ②

‘어쩐지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한다’는 생각을 지난 글(https://brunch.co.kr/@grape/259)을 읽고 했다면, 말하겠다. 당신은 제대로 짚었다. 그러나 그 뚱딴지 같은 과정이 변화하는 언론계에선 필요하다. 진행 중이기도 하고. ‘그래서, 당신은 지면 기사와 온라인 기사는 결국 같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냐. 혹은 기사 얘기를 하겠다면서 무슨 조직 이야기를 그렇게나 풀어놓았느냐’고 묻는다면 둘 다 옳다. 지면 기사는 결국 온라인 기사와 같아야 하고, 반대로 온라인 기사 역시 지면 기사와 같아야 한다. 여기서 ‘같아야 한다’는 것은 둘 다 ‘취재와 기획, 고민’으로 발품 팔아 나온 기사여야 한다는 뜻. 기사가 쓰여지는 과정은 같아야 한다. 그 툴(tool)은 다를지언정, 혹은 독자가 그걸 읽는 기계(태블릿 PC든 컴퓨터든 스마트폰이든 혹은 유튜브든!)가 다를지라도. 조직 이야기? 조직이 지향하는 바도 그렇다. 발품 파는 개인을 코너에 몰아 나가떨어지게 하는 조직이 아닌 기획에 힘을 실어주고 그에 맞는 환경을 마련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먼저, 온라인 기사와 지면 기사가 같아야 한다는 얘기를 다시 풀겠다. 기본적으로 기자가 기사를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대체로 약자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발로 뛰겠다고 생각해서 꿈을 꾼 이가 대다수일 거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 그렇다는 얘기다. 내 경우에도 그렇다. 천사들의 꿈 찾기 프로젝트, 듣는 귀가 필요한 곳은 어디든 따위를 내걸고 기자를 꿈꿨던 나의 언론고시생 시절엔 똑같은 꿈을 꾸는 동료들이 있었다. 그 결의 세세함은 서로가 다를지언정 목적은 같았다. 약자의 얘기를 들어야지. 혹은 정의를 바로 세워야지. 대체로 언론고시생의 꿈이 실제 기자보다 원대한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언론고시생 시절의 원대한 꿈을 가슴 한 켠에 사표 말고 품고 있어야 온라인 기사를 대하는 진지함도 나온다는 거다.


기사를 보는 환경이 변하면서 기사 시스템에는 조회수대로 순위를 매긴 코너가 생기기도 하고 어떤 언론사는 대형 스크린에 기사 조회수 순위를 띄워 두고 기자들을 압박하기도 한단다. 또는 이런 문화와는 완전히 떨어져서 대체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고 사는 기자들도 많다. 그러나 포털 사이트든 어디든 ‘턱턱’ 걸려서는 국장의 ‘나이스’ 소리를 불러오는 기사가 결국은 이런 조회수 1등 기사라면, 아서라. 기사는 그래서 파편화되고 조각 조각 나고 마는 것이다. 무슨 얘기냐. 쉽게 말해, 짧고 단순하게, 한 가지 얘기를 그저 쓴 이야기. 그것에만 열광하는 사회가 된다는 얘기다. 이는 미래가 아닌 우리가 사는 현재며 독자 여러분도 이미 다 알고 있을 얘기다. 실제 우리가 눌러보는 대다수 기사는 ‘에잇 싱겁다’ 싶지만 그런 기사가 조회수가 잘 나오니 언론사 입장에서는 장사를 생각하면 포기할 수 없는 방법인 셈이다. 그래서 기사는 자꾸만 조각나고 파편화됐으며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길이가 긴 기사는 여전히 외면받는가. 그렇다고는 대답할 수 없다. 여전히 길이가 긴 호흡을 가진 주간지, 월간지 등이 버티고 있으며(그야말로 ‘버티고 있다’) 이들을 지원하는 특정 독자층도 있다. 물론 이들이 본래 텍스트를 좋아하고 종이 매체를 다루는 데 보다 능숙하며(놀라지 마라. 텍스트보다 영상 뉴스를 보는 데 익숙한 세대가 있으니 당연한 일이 아니다) 개중엔 언론고시생이 아마 대다수일 터. 타자기와 종이와 펜 혹은 마이크와 방송 카메라를 보던 이들이 온라인 뉴스를 쓰라는 환경에 뚝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대부분은 적응하지만 툴툴대는 이도 많다. 그렇다면 본래 매스 미디어 환경(라디오, 브라운관, 지면 등)에 있던 시니어 기자들에게 온라인 뉴스 환경을 툭 던져주면 어떨까.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반발하는 사람이 나오고 만다. 이런 사람을 이끌고 가는 것도 나는 변화하는 시대를 맞이하는 기자 혹은 그 기자를 품은 조직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지만 그야말로 중이 결정할 일.


다시 돌아와서, 지면 기사와 온라인 기사가 같아야 한다는 건 무슨 의미냐. 결국 기자가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작성하는 과정에서 발품을 팔고 자기가 제시했던 문제의식에 답을 내려야 한다는 것. 최근의 기사는 단순 사실의 나열뿐이 아니라 때론 해답까지 던져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공론의 장을 열어줄 필요가 있다는 거다. 개인적인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약자의 시선에서여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어디까지나 사람의 시선에서. 그 사람의 시선이란 힘과 권력 그 어느 것도 들어가지 않은 약자의 시선에서. 그걸 지향한다는 데에는 지면 기사나 온라인 기사 혹은 영상 기사가 다를 수 없다. 기본권을 생각하는 것. 그게 기사가 쓰이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또 있다. 이런 원리라면 AI 시대, 기자가 대체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 된다. 저널리스트는 살아남을 테니까 말이다.


① 기사를 쓰는 기자의 태도-①

② 지면 기사와 온라인 기사, 고양이로 알아보자-①

     지면 기사와 온라인 기사-②

③ 취재원을 대하는 기자

④ 기자에게 생기는 직업병

⑤ 기사를 읽기 전에 독자가 알면 좋을 몇 가지

⑥ 일부 언론사의 고질병 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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