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나를 감당하던 시절에는 대체로 그것이 고통스러워도 어떤 믿는 구석이 있었다. 나는 나를 가장 믿었다. 내 뒷배는 나였다. 나를 믿었다. 필요할 때 제 능력을 잘 꺼내 보일 수 있도록 평소의 내가 조금 많이 단련하면 그뿐이었다. 과신도 자신감도 아니었으나 그건 그냥 내가 조용히 내 삶을 영위하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말과 뜻을 숨겼고 굳이 내 꿈을 말하려 하지 않았다. '노인과 바다'에 보면 "말을 하면 될 일도 잘 안 되지"라는 구절이 있는데, 지금은 이 표현에 대한 생각이 또 다르지만, 어쨌든 그때는 이걸 꽤 믿는 축이었다. 믿는다기보다 평소 생각을 가장 잘 반영한 말이어서 반가웠던 기억이 있다. 뭐, 어릴 때 일이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는 걸까. 작년을 기점으로 참 많은 게 달라진 것 같다. 그게 나에게 좋은 일이고 난 어쨌거나 그 세계에서 살고 싶다면 그걸 일찍 겪은 걸 참 좋은 거라 생각한다. 뭐 다른 상처의 크기 이런 걸 말할 필요도 없다. 그냥 끝이 좋으면 좋은 거다. 시간을 돌리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걸 다시 겪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다시 간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더더욱 없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으면 된 거다. 그걸로 설명 안 되는 일들이 훨씬 많다는 걸 나는 분명히 알지만 다시 예전의 생각대로 돌아가려 한다. 그냥 나는 평정심을 갖고 예전처럼 살면 되는 거다. 거기에 살을 붙여갈 뿐이다. 나를 곤혹스럽게 하는 일들에도 눈을 감거나 투쟁이 필요하면 나서고 뭐 그뿐이다. 다른 건 없다. 과하게 의미 두려 하지 않아도 사실 많이 어렵고 어지럽다. 그냥 좋은 것만 생각해보자.
좋은 것만 생각하자. 이 말을 자꾸만 하게 되는 건 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있다는 의미일까. 자꾸만 무언가를 찾아 나서던 모습을 죽이게 되는 일이 잦아지는 걸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아니, 그걸 어떻게 잘 녹여낼 수 있을지. 어쩔 수 없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더한 일들도 더 많을 걸 생각하면 가끔 두렵지만, 그것도 내가 시간이 지나 지금보다 더 강한 굳은살들을 가지고 있다면 별일 아닌 걸로 잘 버텨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사실 무섭다. 나는 많이 약한 사람이었던 걸까. 잘 모르겠는 것들이 많아질 때면 그저 예전의 나를 찾아 의지해보려 한다. 단정하는 걸 싫어하고 그저 어떤 알 수 없는 확신에 차서 앞만 보고 조용히 가던 아이. 단순하게 생각하자. 근데 고민은 하자. 고민까지 포기하는 삶은 너무 우울할 것 같다. 난 행복하게 살고 싶어 이렇게 돌아오게 됐지만 지금 이 길에 서서도 이게 최선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걸 완전히 막을 순 없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일 거라 생각하지만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어리석은 일일까 현명한 고민을 위한 시작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