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펙토 페트로눔

by 팔로 쓰는 앎Arm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싫다고 버린 것들에 대해 시끄럽게 떠드는 이들을 마주하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더 발전하겠다고 버린 것들인데 그게 아까워서 뭐 어떻다고 말하는 발상들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불쾌하다. 견딜 수가 없다. 내가 가장 힘들 땐 더 괴롭히다가 잘 되면 와서 숟가락 얹으려는 이들도 지옥이다. 잠깐 삐끗해보이면 조롱하려드는 이들이 가까운 이들이라는 게 늘 절망스럽다. 누군가들은 "주위가 그러면 너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세상엔 나같은 호구들이 있다. 자신이 호구라는 걸 늦게서야 알게 된 호구들이 있으니 "이런 인간 유형도 있구나" 하고 넘어가면 될 일이다.


지나치게 배려하고 속으로 삼키는 내 성향이 지금의 내 지옥을 만들었다는 생각에 나는 고통스럽고 우습다고 생각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그 유치한 문장이 최근 몇 개월간 아주 와닿았다. 있지도 않던 보따리를 내놓으라는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나는 과거의 나를 생각했다. "너의 선한 의지가 훗날 너에게 지옥을 준단다." 하지만 나는 또 이겨낼 거란 걸 안다. 나는 강하고 미래지향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만 슬픈 것이다. 가까운 데 구멍이 있다는 건 아마 이 생의 전체를 보더라도 해결하기 힘들 고통을 내게 자주 줄 것이다. 고통이 점점 커지는 걸 보니 더한 고통도 올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가장 좋을 때 죽어버려야지.


그 옛날 "ㅇㅇ, 내일 죽기로 했다"는 뉘앙스의 책이 유행하기 한참 전부터 나는 늘 생각했다. 늘 고고한 죽음을 생각했다. 그 고고한 죽음을 위해 내가 못할 건 없었다(유교걸 기준의 '못할 건 없다'는 것임.) 나는 늘 죽음을 생각한다. 호상을 생각한다. 그래서 퍼주고 손해보고 그랬다. 그렇게 지금 좀 손해보면 내게 좋게 돌아오라는 걸 그냥 세상의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가? 엄청난 고통에 처해있지만 나는 또 나아질 거라고 믿는다. 다만 생이라는 게 계속 이렇게 고통을 이겨나가야 하는 거라면 너무나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생은 고통이라는 걸 늘 알고 있지만, 고통의 분담이 저마다에게 다른 것도 사실이다. 그럼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 필요없는 생각이다. 고민은 고민이고, 나아갈 건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거지같은 디멘터들에게 계속해서 에너지를 뺏길 수 없다. 이 지옥에서 나를 구할 건 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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