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없다

by 팔로 쓰는 앎Arm

잠깐의 안정을 맛보았던 그 때,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이렇게 집 사고 안주하며 평생 한국에서 이 일을 하며 살게되는 건가. 그건 싫은데. 그래서 내 손으로 만든 것들을 무너뜨렸다. 버리고 태워야 새로운 게 들어온다. 그렇게 미련없이 버리고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지난해엔 몇 번이고 돌아봤다. 그 순간을 생각한다. 그건 다 타의에 의해서다. 심장이 너무 오래 뛴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분명 나아지지만, 그 무엇보다 더한 지옥도 열린다. 가까운 데 지옥이 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아가리를 벌린 그 지옥은 나를 계속해서 삼킨다. 전생에 큰 죄가 많나보다 생각한다. 그 죄를 다 지워야 이번 생이 끝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삶이다.


어릴 때부터 폭언과 협박에 익숙했다. 억울한 일을 겪는 건 습관이 됐다. 그래서 밖이 좋았다. 학교가 좋았고 일이 좋았다. 문제는 그 폭언과 협박에 대한 익숙함이 역치를 지나치게 높여 견디지 말아야 하는 상황들을 견디게 했다는 것이다. 그걸 보고 무서워 하는 사람들이 있고, 어둠을 이겨내면 깨끗할 리 없다고 손가락질 하는 치들이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내게 열등감을 가진 이들에 둘러싸여서 영문도 모른 체 매일 괴로웠다. 그 와중에도 살겠다고 나는 작은 기쁨을 찾아 다녔다.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아름다운 예술품을 보러 다녔다. 박물관은 늘 나를 살게 해줬다. 누구나 죽는다는 걸 가장 아름답게 알려주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박물관은 내게 그런 가치가 있는 곳이다.


지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나아가려 할 때마다 디멘터(!)가 나를 감싼다. 영혼을 빨아들이려 한다. 난 술도 못 먹고 다른 것도 안 하니 맨정신으로 늘 맞서야 한다. 맨정신으로 맞서고 나면 그럴 리 없다고 손가락질하는 인간 디멘터(!)들을 마주한다. 타인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것을 자신에 대한 무시로 알고 폭언하고 폭력으로 해결하려 하는 이들은 내 삶에 아주 많다. 도움을 청하거나 누구에게 말하지 않는다. 도움을 청하면 반드시 대가가 있다. 그 시간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나면 "너무 끔직한 일이라" 그 상대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 짐을 지울 수 없다. 결국엔 관계가 파탄나게 되리란 걸 알기 때문이다.


큰 짐이 있다. 수치심은 별 것도 아니다. 삶은 수치를 견디는 일이다. 모욕을 견디는 일이다. 견딜수록 더 큰 모욕이 더해진다. 이걸 버텨? 이것도 가져봐. 누군가 이러는 것만 같다. 이 시스템의 기획자란 게 있다면 내 설정값을 바꿔주길 청한다. 이제 이런 걸 더 견디기 어렵다. "뭐 어떡해. 해내야지"하는 내 마음을 이렇게 악용하지 말아달라. 기획자에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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