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글

by 팔로 쓰는 앎Arm

#1. 과거의 찌꺼기를 들고 사는 것은 무슨 기분일까. 과거에 멋지게 지어둔 옷을 걸치고 넝마짝이 된 마음을 가리느라 급급했다. 지금을 즐기고 싶은데, 아무래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게 힘들었던 모양이다. 난 공부가 하고 싶었다. 그게 다였다. 그럼 그 꿈을 향해 다시 한 번 나아가자. 내가 내게 말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인생이 긴 것 같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다시 일어나야 했다. 나 하나는 괜찮았다. 내가 힘들었던 건 결국 타인의 말들을 주워 내가 내 가슴에 꽂은 탓이다. 말을 쏘아대면 피하면 된다. 줍지 말자.


#2. 이만하면 행복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좋은 사람들과의 식사 하나로 하루가 충만해졌다. 어떤 판단도 없고, 맛있는 것만 찾았다. 입맛이 떨어지면 큰일이라더니, 재미를 위해 맛있는 걸 찾는 게 싫지 않았다. 부담스러웠지만, 결국은 만족스러웠다.


#3.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 든다. 건강이 좋아졌다는 확신도 들었다. 늘 아팠던 것이 아프지 않게 되고나자 기쁨이 솟아올랐다.


#4. 늘 찾아오던 '그 분'이 한동안 오시지 않아 궁금했다. 그 분이 돌아올 수 있게 하려면 어째야 하나 생각했다. 일단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걸까. 늘 나는 정답을 알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쩐지 길을 잃었다.


#5. 일기를 쓰는 게 부담스러워졌다. 그럼 안 쓰면 될 일이다.


#6. 고민이 생기면 무작정 걷거나 물 속에 들어간다. 그렇게 나를 돌보는 법을 배운다. 뭐, 나쁘지 않다. 올해가 내게 좋지 않은 해라고 들었는데, 그 상반기가 이제 지나가고 있다. 이제 좋은 기운을 가져다 준다던 하반기가 온다. 늘 6월이 힘들었는데, 어쩐지 올해는 6월이 참 좋다.


#7. 올해라는 표현이 오는 해라든가 그래서 쓰면 안 된다든가 하는 10여년 전 그 대화들이 생각난다. 피곤하다 피곤해.


#8.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감사는 그 분을 다시 데려올 것이다. 어쩌면 그 분이 오는 걸 내가 부담스러워한다는 생각도 든다. 생각은 일을 그르친다. 조용히 침잠하자.


#9. 절약은 늘 옳다. 길을 잃은 것 같아도 로션과 절약은 절대 잊지 말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볕 들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