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 들 날

by 팔로 쓰는 앎Arm

살면서 이런 기분이 든 적 있다. 내가 기뻐지려고 하거나 행복하려고 하면 반드시 무슨 일이 일어나고야 마는 것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든 습관은 그래서 늘 잘 될 거라고 생각은 하되 안 될 가능성도 이만큼이나 생각하고 마음에 저장해두는 것이다. 그러면 패를 까보았을 때 덜 놀란다. 잘 되면 배로 기쁘고 안 되면 다음으로 빨리 넘어갈 수 있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요즘 나는 또 생각한다. 넝마짝이 되어버린 마음인데 더 거지꼴이 될 수 있구나 하는 걸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그래서 생각한다. 더 거지꼴의 마음 모양을 가질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뒤통수맞는 일은 질리지도 않게 일어난다. 그걸 뒤통수라고 생각도 않는다. 그냥 나는 인복이 없다고 생각하면 마음은 꽤 괜찮아진다. 모두가 내게 기대려고만 한다. 모두가 의지하려고만 한다. 난 호구같이 퍼주는 사람이 된지 오래다. 그래서 그냥 또 한편으로 생각한다. 또 그런 사람들이 있을 거고, 나보다 더 배포가 크고 훌륭한 사람들이겠지! 여유가 더 있겠지! 그러니 그런 살람들의 편에 서는 게 낫지 않나? 내게 말한다. 남에게 기대는 이들보다는 주는 이가 더 멋지니까.


쉬어본 적 없는데 쉬어본 적 있는 척해야 하고, 쪼들려서 안 먹고 안 입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척해야 하는 게 이골이 난다. 자기가 평균치인줄 아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들은 사랑이 충만해서인지 뭔지 모르겠는데 제멋대로 떠든다. 듣기 힘들다. 이런 거 저런 거 둘째 치고 가까운 데 구멍이 있는 이 삶이 점점 더 싫어진다. 내가 잘하면, 내가 성공하면 되겠지 했던 것들인데, 지금의 나는 어쩐 일인지 너무 지친다. 산다는 건 너무나 치욕스럽고 고통스럽고 힘이 든다. 그렇지 않은 것처럼 기뻐지려 하면 너답지 않다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내겐 고통이 디폴트값으로 어울리나 보다. 그런 사람이 어디 있는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지 막막하다. 그래도 볕 들 날이 올 거라고 믿지만, 모든 게 지친다. 빛이 들면 몰려올 파리떼가 두렵고 비빌 언덕은 자신뿐인 내 처지도 이젠 너무나 부담스럽다.


그렇다. 나는 이제 모든 게 부담스럽다. 그 정도가 지나친 부담이 나를 옥죄고 있다. 훨훨 날아가고 싶다. 당장 방법이 보이질 않는다. 어떤 값이 잘못된 걸까. 뭐가 잘못된 걸까. 늘 정답이 있었다. 질려버린 게 문제일까. 계속 산다는 건 너무 치욕스러운 일만 같다. 작년부터 든 그 생각이 가시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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