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 지난 사람, 벌어진 일들. 내가 너를 원망해도 달라질 건 없다.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고 슬퍼도 혼자 참았던 지난 세월과 달리 나는 이젠 어른이 되었으니 겪을 건 겪어봐도 좋다는. 그러니까, 지금 나이에는 이 일을 겪어도 좋아. 그러니 가자하는 어떤 삶의 내 나름대로의 과정 같은 것들이 있는데, 너는 마침 그 자리에서 딱 알맞게 나를 흔들어 주었다.
하고픈 것에 관해서만 과감했지 다른 데는 그렇지 못했던 나에게 너는 참 무섭기도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너를 만날 걸 후회했던 적도 있고, 후회하지 말고 참아보자. 좀 가혹해도 어쩔 수 없다. 내가 어려서 선택해본 적이 없기에 그걸 지금 치르는 것이리라. 그래. 내 나름의 합리화를 하기도 했다.
시간은 무섭게 흘러서 너와 함께 한 세월이 길어졌다. 이전엔 겪어보지 못했던 많은 감정의 또 다른 요동침과 너로 인해 생겨난 감당하기 아팠던 일들이 지나고 나니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그 혼란 속에 있을 때도 어쩌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어쨌든 지나갈 거라는 걸. 언제나 알았으니까. 고통은 지나간다. 그냥 그게 내게 남길 것이 어떤 것이 될지가 다를 뿐이다.
너는 내가 너무 완벽주의라 했다. 말 없는 나, 표현하지 않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네게 맞춰 조금 변화하는 척해봐도 나는 여전히 내 할 말을 숨기는 게 더 현명하다고 믿는다. 나는 듣는 귀가 더 좋지 내 얘기를 떠벌리는 성격은 아무래도 못된다. 그래서 어설프다. 다른 사람과의 침묵의 공간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는 나로서는, 말을 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가리는 게 어려워져 버렸다. 한 번도 어렵지 않았다. 그냥 센스 있다 소리 들을 정도로 말을 할 수도 있었고, 너는 참 말이 없구나 할 정도로 말이 없을 수도 있었다. 그건 그때의 분위기가 결정한다.
그게 때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음을 안 후부터는 나는 묵언이 참 좋았다. 그냥 말을 않음으로써 내가 감당해야 할 쓸데없는 가십에서는 벗어나 적당한 위치에 자리할 수 있었으니까. 근데 그게 아니라는 너. 그렇게 하면 멍청이가 되어버린다는 말. 그래,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혼란스럽다. 모두가 같은 걸 느끼고 있을까? 그런 원초적 고민까지 네가 알 때, 내가 말하지 않아도 네가 나를 단정해버릴 때,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그냥 고맙기도 하다.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니. 우린 서로 다 그 정도 존재겠지.